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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Oct 09. 2023

2023 바인 작가 개인전 서문

우리는 고향을 떠올릴 때 알몸이 된다 (김본부)



신림아이러니한 공간

바인 작가의 주제이자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신림이다. 신림, 이라는 말은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이나 그 일대 먹자골목 인근을 뜻하는 행정동으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조금 더 큰 법정동으로써의 신림은 행정동 신림을 포함하여, 난곡동, 난향동, 대학동, 미성동, 삼성동 등 11개 행정동을 포괄한다. 관악산 중심에서 시작하여 북서쪽으로 구로디지털단지역과 신대방역까지 이르는, 관악구 전체 면적의 약 60%에 해당하는 꽤나 큰 행정구역인 셈이다. 작가는 이러한 신림의 노후되거나 낙후된 곳을 골라 작업한다. 

신림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모여 있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서울대학교가 터를 잡은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에는 오래된 이용원와 방석집 또한 존재한다. 외관이 번듯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도 했지만, 30년도 넘은 구옥과,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새로 터를 닦는 재개발 단지도 볼 수 있다.

신림은 작가 개인에게도 아이러니한 곳이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라고 떠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이란 떠나기 이전에는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가, 정작 떠나고 보면 아련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 된다. 하지만 고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천천히오래도록 변화하는 고향 

7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살던 청년들은 도시에 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서울에 자리를 잡고 도시인으로 살다가 되돌아간 고향은 어느새 자신이 기억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인 작가는 고밀화된 도시에서 나고 자란 데다가, 같은 곳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갑작스런 고향의 상실은 겪지 않는다. 대신 고향이 바뀌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도한다. 아주 천천히, 수십 년에 걸쳐 느린 속도로 변화하는 고향을 보며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적지 않은 세월을 몇 마디의 단어로 함축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작가는 오래도록 변화했고,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스스로의 고향을 보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신림을 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말이다.      


고향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바인 작가가 신림이라는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어떤 작업은 신림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래된 적벽돌로 조적된 벽, 그 위를 타고 오르는 가스관, CCTV와 오래된 전봇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널린 속옷과, 사람 키보다도 낮은 문짝을 여전히 달고 있는 오래된 가옥까지 모두 더 없이 사실적이다. 

반면 같은 공간을 그리더라도, 마치 꿈결에서 보는 것처럼 추상화해 다소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업도 있다. 이런 작업들은 신림동의 건물과 도림천을 간결한 곡선과 직선, 그리고 점 등으로 단순하게 표현한다는 공톰점이 있다. 그러는 반면 또 어떤 작품은 사실성과 환상성이 공존하기도 한다. <산화>의 경우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녹슨 공사장 가설 울타리는 사실적으로 표현된 반면, 그 전경과 후경은 다시 환상적 추상으로 표현돼 있다. 작가가 적지 않은 세월을 신림에서 보낸 만큼, 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양하고 양가적인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진진이라는 소녀

바인 작가의 작업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림 특유의 분위기를 가장자리가 작은 점들로 구분된 원 형태의 도상으로 표현한다거나, 실제 신림에서 수집한 나무조각을 작품에 콜라주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진진이”라는 알몸의 소녀다. 이 소녀가 누구이며, 어떤 감정을 갖고 왜 그곳에 서 있는지에 대한 정의를 감상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해석은 달라진다. 진진이는 누구인가. 작가의 페르소나? 아니면 신림이라는 작가의 긴 서사를 구성하는 가상의 인물? 혹은 감상자들의 이입을 기다리는 아바타이거나, 그 외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당신이 누구든 간에 진진이가 누구인지 정의할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진진이처럼 알몸이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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