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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Oct 18. 2023

전시 서문 쓰는 사람

미술계 뒷담화를 좀 들을 기회가 있다 보니 평론 공부를 한 적도 없는 사람이 전시 서문 몇 편 썼다고 평론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엄청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찮은 기회에 전시 서문을 써본 경험이 있고,

기회만 닿는다면 계속 그러고 싶은 나는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미술평론가인가?

당연히 아니다.

미술평론을 배운 적도 없고, 할 수 있는 수준도 안 되기 때문에 답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전시 서문을 쓰는 스스로를 어디 가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미술 평론가는 당연히 아니다.

평론을 써서 전시의 서문을 갈음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일단 평론가가 아니고, 내가 여태 쓴 두 편의 서문도 평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감상자 친화적이고 쉬운 글을 쓰는 걸 지향한다는 점에서 도슨트와 비슷하지만, 사람들을 그림 앞으로 안내하며 현장에서 설명하는 도슨트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시의 서문을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전시기획자나 홍보 담당자가 하는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둘도 아니다.


미술 애호가라는 말로는 약간 부족하고.

내 결론은 전시 서문만을 작성하는 사람에 대한 명칭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부를 만한 마땅한 명칭이 없으니 "평론가"라는 말에 자의든 타의든 기대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애매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보통 전시 서문은 큐레이터나 평론가가 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많은 전시의 서문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이다.


어느 전시를 가든, 곧바로 입장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나서 잠시 기다려보라.

A4형태로 비치되었든, 벽에 인쇄되었든, 서문이 잘 보이는 곳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서문을 다 읽지 않고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서문의 도움 없이 전시를 관람하는 것은 관람자에게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서문을 쓴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애써 써놓은 글을 감상자들이 채 다 보지도 않고 입장하는 것에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지금 쓰여지는 많은 전시 서문은 너무 어렵고, 난해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다 같은 말이지만, 강조하기 위해 세 번 써봤다)


그래서 나는 좋은 전시 서문을 쓰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다고 본다.

수준높은 평론이 필요한 것처럼, 쉬운 서문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런 글을 내가 썼으면 좋겠다.

당장은 서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지만, 하다 보면 뭐라고든 불러주겠지.


오늘의 결론.

전시 서문 써드립니다.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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