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장관은 1938년 9월1일, 경북 청도에서 출생하셨고, 부산 동래중학교, 부산고, 서울대 약대, 약학박사 미국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수학하셨습니다.
약학, 동양철학, 한의학, 미생물, 원자력, 우주과학 등 통섭 학자로 평생 녹색삶이란 기치를 주장했고, 통합의학, 자연과학, 동양철학 기반의 과학자로 한평생 과학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2년 과학 대통령이란 기치로 대통령 경선에 나가 그 후 과학 대통령이란 닉네임으로 과학으로 근대화, 선진화의 초석을 다지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염원은 노벨상 수상, 대한민국 과학 발전을 위해 과학의 전당을 건립하는 것으로 사단법인 과학의전당을 출범시킨 계기를 만들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과학의전당에서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동아제약 상무로 근무하던 중 1981년 제11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발탁, 12대 국회의원까지 역임했고, 1988년 제11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했으며, 이어 장관급 국가 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했습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한국 영재학회 회장, 한국발명진흥회 회장을 역임하셨으며, 특히 지금의 역삼동 발명진흥회 건물을 마련하는 예산을 확립하는 중임을 완수하셨고, 한나라당에서는 정책위의장, 기조실장 등의 중책을 연이어 맡으셨습니다.
2000년 5월 제16대 국회의원에 부산에서 출마하여 당선됐으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2004년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3연임 하면서 대한변리사회를 법정단체로 승격시키는 중책을 맡아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가천대 의과대학, 부경대 등의 석좌교수로 근무하시다가 국립 과천과학관 관장을 맡아 오늘날 과천과학관의 초석을 다지는데 열정을 불태우셨습니다. 부산대, 단국대 등의 석좌교수를 맡을 때 단국대학교 이사장 취임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셨고, 재단 이사회 임원으로 단국대학교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녹색삶지식원, 과학의전당, 한국우주청소년단, 영재학회, 한국클라우드협회, 벤처한림회 등 수많은 협∙단체 창립을 주도했으며 회장, 명예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국회 등에서 우리나라 과학을 위해 입법 활동을 하신 약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의정 활동으로, 1981년 해양오염방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유전공학육성법,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해양개발기본법, 멀티미디어폴리스법, 뇌연구촉진법, 생명공학육성법, 영재교육진흥법, 전자거래기본법, 국가표준기본법,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 전자정부 구현 및 운영법, 이러닝산업발전법, 국가 기술공황을 위한 이공계지원특별법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희귀한 과학 발전 진흥에 관한 법안을 마련하고, 지원해서 우리나라 과학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국회에서 2000년에 가상정보가치연구회를 비롯하여 첨단사업발전론, 부산권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연구, 항공우주산업 정책 연구, 생명공학 국가정책, 바이오매스 자원조사 활용 연구, 기업 특허전략과 기슬개발 연구 등의 다양한 연구 활동을 수행했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수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한약사회 최우수 논문상, 청조근정 훈장, 우수국감의원상, 아이젠하워피트니스어워드, 우남과학진흥상, 지식재산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故 이상희 장관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과학지도자, 과학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열정의 과학자를 위해 우리는 오늘 이런 조촐한 추모행사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고인의 열정과 노력이 부디 재평가받고 다시 조명 받는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약력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2024.9.12.
녹색삶지식원 원장 심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