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확히는 16년이란 시간에 1,5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의 소박한 목표는 1,000권 읽기였는데, 막상 그 목표를 채우니 흐름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물론 앞으로는 더 많이 읽겠지만 말이다.
목적과 목표가 있는 독서를 지향한다. 성공을 하겠다는 막연한 목적, 잃어버린 꿈을 찾겠다는 희망적인 목적, 과시적으로 많이 읽겠다는 욕망적인 목표 등 그렇게 마음의 욕심을 담아 책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자기계발서와 경영서 그리고 경제학 책을 주로 찾았다.
이제는 슬슬 질릴 때도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운명인가. 최근에는 수집가라는 페르소나를 추가하고 다 읽지도 않은 채 일단 책을 산다. 이 페르소나를 왜 이제야 찾았는지... 너무나 좋은 가면이다. 독서가, 서평가, 리뷰어 이런 페르소나는 뭔가 글로 적어 결과물로 내가 읽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수집가는 그렇지 않다. 그저 수집을 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읽기보다 사기는 훨씬 더 쉽기에. 사고 싶은 책을 욕심껏 사다 보니 집에 있는 책장이란 책장은 모두 다 가득 채우고 이제는 서재 바닥부터 책으로 쌓아 올리는 중이다. 계속해서 잘 쌓으면 천장까지 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아내 눈치가 보인다. 가끔 아내는 작은 내 서재를 보면서 걱정하듯 말한다.
"이 방이 책으로 무너져 내리진 않을까 걱정이야."
그리고 아들은 아빠의 서재를 보면서 말한다.
"이 방은 모든 것이 들어가는 마법 같은 방이야. 대신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이 말들이 비난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사랑이 담긴, 약간의 걱정도 담긴 조언이다. 그렇다고 수집을 멈출 수는 없으니 내가 계획한 것의 절반만 사기로 생각해 본다. 책을 수집하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서재에 새로움을 더하고 싶어졌다. 전부터 마음에는 담았지만, 끌리지 않아서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
바로 문학책을 수집하는 것.
자기계발러에게 문학이란,
(쓸데없이)과도하게 감정을 흔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잠겨있는, 현실을 바꾸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유효하다. 책을 읽고 난 후 삶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학은 변화보다는 공감, 매몰, 동화의 감정에 가깝다고 느낀다. 현실에서 나아가기 위해 문학책을 멀리했다.
'내가 오해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문학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문학이 궁금해졌다. 궁금해하고 있던 순간,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소식도 들려왔다. 문학이 주는 힘이란 무엇일까. 문학을 읽고 싶다는 작은 열망이 생겼다.
혼자서 읽으면 금세 내가 좋아하는 실용서로 눈을 돌릴 것이 분명하기에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함께 읽는 도반을 만드는 것. 내 주변에 문학을 읽는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으로. 문학에 진심인 사람으로. 나와 반대로 자기계발서는 잘 안 읽는 사람으로.
나는 ‘자기계발러의 문학 읽기’
(그분은 뭐라고 제목을 지으시려나?)
일단 각자가 생각하는 전공(?) 분야의 베스트 책을 30권씩 선정했다. 그리고 2주간 책을 1권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이 프로젝트는 독서의 균형과 상대방의 이해를 가져오게 될까? 아니면 반대를 인정하며 마무리될까?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다.
문학의 첫 번째 책은 <시와 산책>
문학은 결국 문과 창문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나보다. 단단한 벽을 뚫어 통로를 내고, 거기 무엇을 드나들게 하고, 때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살피는 일.(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