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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Feb 24. 2021

기껏 만든 볶음밥을 쏟았을 때

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5)

코로나 시대를 맞아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 점심 메뉴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는 건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간밤에 9천4백만 뷰를 자랑하는 어느 유튜버의 황금볶음밥 레시피를 정주행하면서 익혀 두었고, 마침 집에서 놀고 있는 굴소스 뚜껑이 자기 좀 써 달라며 노래를 부르던 참에 계란과 파로 후다닥 볶음밥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심심한 간으로 슥슥샥샥 볶음밥을 만들어 가스불을 끄고 옮겨담을 그릇을 가지러 가던 찰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후라이팬 손잡이를 건드린 탓에,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볶음밥이 팝콘처럼 솟구쳤다가 바닥에 촤르륵 펼쳐지고 만 것이다. 진짜 인터넷 짤방에서만 보던 풍경이 우리 집 주방에 펼쳐졌다. 등짝을 드러낸 채 바닥에 퍼져 버린 후라이팬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안 꼴은 또 뭐란 말인가.


순간 고민했다

요리는 무슨, 이참에 피자나 시킬까.


하지만 나에게는 남은 밥이 있고 레토르트 카레가 두 팩이나 있고 계란과 버섯이 있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쏟아진 볶음밥을 주워담아 정리하고 구석구석 기름투성이가 된 곳을 닦아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카레를 데웠다. 마늘향을 입힌 올리브유에 버섯을 볶고, 반숙 계란을 올린 카레를 먹으며 생각했다.


피자를 시키는 것은 쉽다.

하지만 살다 보면 피자 한 판이 간절함에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요즈음, 해 먹을 여유도 사 먹을 자유도 있는 내가 손쉬운 배달을 시키는 대신 직접 요리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일은 또 뭘 해 먹을지, 어떻게 장을 봐야 할지는 지금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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