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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Sep 15. 2023

글 쓰려고 회사 다닙니다.

커리어 에세이 (1) 왜 이 일을 하는가

살면서 단 한 번도 회사원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마주한 내 모습을 납득하고 나서부터는 별다른 큰 꿈을 갖지 않게 되었다. 경제적 수단의 필요에 의해, 정확히 말하면 취준생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학부 졸업과 취준을 거쳐 시작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대학 시절 내내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나에게는 ‘처음 만나는 자유’ 였다. 하루에 이메일 한 통이 올까말까 할 만큼 지루한 나날들을 버티고자 온갖 자기계발을 하던 중, 망한 연애로 인한 후유증을 버텨내기 위해 인생에 대한 온갖 고찰을 버무린 ‘소설’을 완성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여전히 나의 생계수단은 직장생활을 통한 근로소득이고, 글쓰기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한 취미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직장생활과 동시에 작가 지망생이 된 셈이었다. 


사실 GA를 탈출하고 커리어 전환에 성공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작은 외국계 회사에서 Admin Assistant로 호기롭게 시작했던 첫 직장생활이 내 커리어의 발목을 잡았고, 해방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했다. 심지어 전 직장에서는 하기 싫은 업무의 연속이었던 것도 모자라, 마이크로매니저 상사의 괴롭힘과 가스라이팅까지 더해져 정말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그래서 다시 소설을 썼다. 괴롭힘을 일삼는 무능한 상사에게 빅엿을 투척하고 당일에 퇴사해 버리는 사이다 퇴사 판타지를 그려낸 단편 소설을 썼고 10명의 공동 저자와 함께 출간까지 해 버렸다. 마치 내가 썼던 소설 속 이야기처럼, 이후의 나는 정말로 상사에게 속 시원히 할 말을 다 했고 이직과 커리어 전환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이직을 앞둔 휴가 기간 동안 어렴풋이 구상만 했던 소설을 쓰기 시작해, 올해 안에 완결을 내는 것을 목표로 집필 중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년차 UX 디자이너가 된 지금의 나는, 해외 디자이너들과 고객사 사이에서 존버하며 고통받는 소통을 조율하며 동료들과 함께 매월 2개 프로젝트의 배포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의미있는 프로덕트를 다루게 되었고, 업무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더이상 내 직업을 밝히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된 이후로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 비효율과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했던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 난관을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전우애를 갖게 되었다. 하루하루 열받는 일들이 쌓여갈수록, 수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을 심금을 울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숱하게 다짐했다. 


책상에 앉아 공상을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검색한 간접경험만으로는 결코 뽑아낼 수 없을 진솔함을 건질 수 있는 것은 결국 내 삶을 거쳐간 이야기였다. 인하우스가 아닌 일종의 에이전시 소속으로, 고객사 그리고 해외에 있는 팀과 함께 일하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나의 VOC가 결국에는 최고의 리소스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첫 소설이 그랬고, 이전의 단편 소설도, 지금 쓰는 소설 또한 그러하다. 다음에 쓸 이야기 역시, 지금의 내가 속한 곳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고민하면서 느꼈던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진짜 작가가 되는 그 날까지, 지금의 내가 마주하는 숱한 고충 또한 다음 글의 소재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터질 지 모르는 삶의 현장으로 내일도 힘차게 출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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