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꿈을 꾸다
생활성서 12월호 게재
이 가상 대화는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 영화 <헤일 시저!> 가운데 ‘성직자들의 프리뷰’ 장면에서 착안했음.
넓고 아름다운 방이었다. 아름드리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곁으로 작은 오르간이 보이고,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는 벽난로엔 양말이 걸렸다. 눈부심이 가시자 훌륭한 분들이 보였다. 음악의 성녀 체칠리아를 중심으로 서양음악의 토대를 닦은 그레고리오 교황, 베네딕토회 수녀 빙겐의 힐데가르트, 오라토리오 기도회를 결성했던 성 네리가 가톨릭을 대표해 참석했다. 쉽고 단순한 성가로 일반 신도를 계몽했던 마르틴 루터의 곁으로는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앉았다. 말석엔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신학자 카를 바르트가 보였다. 동방정교 전례를 정비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호두까기인형>을 쓴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모두 둘러앉자, 늘 단정한 체칠리아 성녀가 입을 연다.
반가운 분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덕분에 훈훈했고 세월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올해도 수고 부탁드립니다.
인상 좋은 빙겐의 힐데가르트 수녀가 설탕에 절인 과일이 보석처럼 박힌 슈톨렌 케이크와 글뤼바인(향신료를 넣어 데운 와인)을 내오며 화답한다.
전 수녀라 그런지 <성모 마리아 학교의 종소리>에 나오는 ‘성모여 우리 위해’가 생각나네요. 고집불통 건물주가 창밖에서 들리는 노래를 듣고 마음이 움직여 신축 건물을 수녀원 학교에 기부하잖아요? 보가더스 할아버지 표정이 얼마나 귀엽던지!
단 것을 싫어하는 그레고리오 교황이 난롯가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끼어든다.
헨리 트래버스는 이듬해 <멋진 인생>에 수호천사 역으로 다시 출연하죠. <성모 마리아 학교의 종소리>를 상영하는 극장 앞을 제임스 스튜어트가 달려가고. 빙 크로스비 노래도 좋지만, 역시 아이들 성탄 연극의 ‘생일 축하’ 노래가 최고죠. 동심의 캐럴이니까.
그런 흑백 영화를 누가 알아요? <러브 액추얼리>도 구닥다리일 텐데, 쯧
그러는 루터는 그 영화들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를 들먹인다. 올해도 에리히 케스트너의 동화 <하늘을 나는 교실>에 나오는 기숙학교 성탄 연극 얘길 하며 훌쩍인다.
전 집에 갈 여비가 없어 풀이 죽은 마르틴이 ‘정의파’ 선생님 도움으로 성탄절에 집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면 꼭 제 친구 같아서 그만...
가발을 벗으니 더 젊어 보이는 바흐가 슈톨렌을 꿀꺽 삼키며 맞장구친다.
우리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합창단에도 타지에서 온 가난한 학생이 많았지요. 제가 방학 때마다 아내 몰래 여비를 찔러주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나 막달레나도 가는 길에 먹을 음식을 싸줬더군요. 다 자식 같은 아이들이었으니까요.
동갑내기 헨델도 가발을 따라 벗었다. 머리가 벗어져 바흐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메시아>가 들릴 때마다 뿌듯하지요. ‘하느님, 이 곡을 제가 썼습니까?’라고요. 할렐루야!
검소한 차림의 금욕적인 필리포 네리 신부가 잔과 접시엔 입도 대지 않고 끼어든다.
설마 헨델 자네는 알겠지? 내가 로마에서 시작한 오라토리오 기도회 덕에 ‘오라토리오’ 양식이 생겼다는 것 말일세! 그때는 신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평범한 신도들이 낭독하고 노래하면서 모두 한마음이 되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말씀보다 무대에 더 빠져서 교회 눈 밖에 나고 말았지. 음악이 신앙의 수단이 아니라 유희가 되고 말았다니까!
안경 위로 글뤼바인처럼 충혈된 눈을 치켜뜬 카를 바르트가 벌떡 일어나 가로막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음악이야말로 이 척박한 세상에서 예감할 수 있는 천국임을 우리 모차르트 님께서 증명하지 않습니까? 천국에 가면 누구보다 그분을 찾겠다고 제가 말했죠?
머리카락부터 수염까지 새하얀 차이콥스키는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왔다. 한 손에 쥔 호두 두 알을 다람쥐처럼 열심히 놀리며 말한다
저도 동감입니다. 저는 늘 모차르트 선배를, 음악으로 대속(代贖)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오케스트라 모음곡 4번은 ‘모차르티아나’라고 제목 붙였고, 특히 3악장은 성가 ‘복되신 성체 Ave verum corpus’의 편곡입니다. 사람들은 절 세속적인 작곡가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전 <철야기도>와 여기 계신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님을 위한 <전례곡>도 썼을 만큼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허리춤에 찬 보드카를 글뤼바인에 타서 얼굴이 불콰해진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답한다.
그 곡은 참 고맙네. 내가 우리 교회에 미친 영향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마드리드였지 아마. 연출가가 <전례곡> 가운데 ‘케루빔 찬가’를 자네 오페라 <이올란타>에 삽입했단 말이야. 평생 앞을 못 보던 공주가 눈을 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순간, 그 무반주 합창곡과 함께 무대가 밝아지는 거지. 페트야, 자네 대단했어. 아무리 그래도 프란체스코 교황이 최근에 동성애자에게 보낸 우호적인 메시지는 맘에 안 든단 말이야.
밝아지는 듯했던 차이콥스키의 얼굴에 다시 어둠이 드리우자, 체칠리아 성녀가 나선다.
자자, 왜 심각해지고 그러십니까. 멀리 가지 않더라도 <호두까기인형> 싫어하는 분 있습니까? 그 발레 없는 크리스마스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 홀로 집에>의 음악도 영향을 받은 거 아세요? 존 윌리엄스가 어떻게 차이콥스키와 연결되느냐고요? 그 친구 스승은 이탈리아계 유대인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였습니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는 선배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스타일을 미국 제자들에게 전달했죠. 레스피기는 젊어서 러시아에 유학했거든요. 그때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우면서 차이콥스키도 알았죠. 귀 밝은 사람이라면 <나 홀로 집에> 주제곡이 시작되자마자 <호두까기 인형>의 ‘눈송이 왈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흔히 크리스마스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보는 영화라고 우습게 보지만 ‘베들레헴의 별’이 나오면 누구나 ‘이 오래된 성가가 뭐더라?’하고 뭉클해지죠.
누가 ‘음악의 성녀’ 아니랄까 봐 설교가 기네!
속으로 불평하던 내가 도발했다.
존경하는 음악의 수호성인 여러분, 도대체 언제까지 추억팔이만 할 겁니까? 세상이 전쟁에 고통받고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는 지금이야말로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아닙니까?
그때 동정녀의 수태를 알렸던 대천사 가브리엘이 날아온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선율과 함께 엄숙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다른 별에 가서도 그분을 기다릴 수 있노라!
맙소사, 이 별이 아니라고요? 차라리 ‘고도’를 기다리지
나는 대들며 천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텁수룩한 콧수염을 한 그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그분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을 텐데. 죽어서 천국 갈 생각하기 전에 장엄한 대자연을 향해 가슴을 펴고 현세의 낙원을 찾으라고! 아모르 파티!
현세의 낙원? 아모르 파티가 어느 별이죠?
나는 허우적대며 잠에서 깼다. 거실 TV에는 오래된 만화가 돌아가고 있다. 도널드의 세 조카 휴이, 류이, 듀이는 매일매일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가 정작 소원이 이뤄지자, 그것이 덧없음을 깨닫고 소원을 물린다.
올해 꿈 이야기를 끝으로 나도 앞으론 ‘추억팔이’보다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슈톨렌과 글뤼바인은 조금 맛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