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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Apr 29. 2019

한 때 지긋지긋했던 말이 나를 키운 걸 알았다.

Such a cliche.

cli·ché (cliche);

1. 상투적인 문구(생각)

2. 상투적인 문구 사용



취업률과 반비례하여 날로 늘어가는 졸업유예 신청에 대한 대책이었는지 내가 졸업할 때 즈음 대학은 졸업요건 자체를 대폭 간소화했다. 기존에 전공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졸업 논문 작성이나 공인 영어성적 점수 같은 기준은 몽땅 사라져 있었다. 학점만 채우면 땡. 하지만 나는 복수전공 과정으로 두 가지 전공에 발을 걸쳐있었는데, 나머지 전공은 학과 특성상 여전히 졸업논문이나 졸업작품(도시설계)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4학년은 각종 준비로 인해 무척이나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설계라는 게 시간을 갈아 넣는 작업이기도 하여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논문반을 택하였는데, 와중에 그래도 마지막으로 불태워볼까 하는 무모한 실험 정신을 지닌 몇몇은 설계반을 선택했다. 그중 하나가 나였고.


그 해에 자기 발로 설계실을 걸어 들어 간 사람은 딱 여덟 명이었다.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거나 막차를 타는 나날이 이어지는 두 학기 내내 우리는 그러니까 논문 하자고 했지 달고 살았다. 아무리 지금 고생하는 게 나중엔 추억이 된다지만, 이런 게 그리울 정도면 미래의 나는 얼마나 힘들 게 살고 있단 거야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나의 도시를 두고, 그 도시에 대해 짚어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미래를 그리고 싶은지 표현해내는 일이 뭐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련의 일들은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다시 무너뜨리고 또 만들고 그럼 다 부셔버리는 식으로 나아갔다. 물론 나의 능력 부족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180cm*90cm짜리 판넬 2개를 1년 동안 만든 게 아니라, 십여 개의 초기 버전이 무너지고 마지막 진화로 탄생한 판넬이 발표회에 걸린 식이었다.(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진화했을 거다. 분명.)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은 지도 교수님은 두 분이었는데 그중 한 분은 프랑스에서 오신 건축가 출신 교수님이었다. 그분은 타오르는 열정으로 구석구석을 모조리 무너뜨려댔는데, 그때마다 사용하던 대사가 바로 클리셰cliche였다.

이 지역의 낙후 현상으로 인해 인구가 유출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유입이 필요해 → 왜 그렇지?

지역의 문화 예술을 자생시켜서 → cliche.

비슷한 동네에서 이런 걸 해서 성공했는데 이런 사례에 착안해서 → cliche. 그건 시간이 좀 더 흐른 지금은 실패라고 판명난 사례야

(선 하나를 가리키며) 이 선은 왜 이런 모양으로 여기에 그여 있지?


Such a cliche-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굵은 마카펜으로 피드백을 판넬에 써댔다.

선의 굵기와 꺾임과 방향 하나부터 색감 하나하나 까지.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은 한 마디로 클리셰와의 사투였다. 그럴듯하게 떠도는 생각이나 어림짐작은 집어치우고, 그 속에서만 흐르고 있는 메커니즘을 읽어내야만 했다.

우리 팀 세 명이 1년 간의 인고를 넣어 만든 마지막 버전. 멀리서 봐야 볼 만 합니다.




흡사 좀비를 연상시키는 퀭한 상태로 학교를 오가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그걸 대체 왜 하냐는 질문을 참 많이 했다.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거냐고. 그걸로 취업을 하고 싶은 거냐고.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봐도 달리 쓸 데가 없었으니까. 이런 일을 직업으로 이어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대단한(여러 의미에서) 사람이 아니었다. 직업화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만큼,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는 어디 가서 할 수 없다는 점에 내가 가진 시간을 내어주었을 뿐이다. 토익 점수나 오피스 자격증 같은 지금 당장 쓸모 있는 것들 대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건대, 당시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였고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말과 시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꽤나 키워내었음이 분명하다.

정말 그런가?

어째서 그렇지?

하지만 이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해도 말이 되나?

아무리 찔러도 무너지지 않을 무언가, 클리셰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무언가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A니까 B’ 같은 사고는 모조리 들어내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랜 기간 당연하게 여겨왔는지와는 무관하게.


또 아니야? 를 외치며 눈물을 머금게 한 '버리고 다시 쌓기'의 과정에서 어떤 사고방식 같은 게 자연스레 체화된 것 같다. 그것은 지금의 나로 하여금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선입견들을 해체할 수 있게 한다. 요즘엔 사기업 경력 쌓고 공기업 이직이 최고예요- 라거나, 여자는 진짜 그런 남자를 만나야 해- 라거나, 연봉은 그 사람의 가치에 매겨진 이자의 개념이야- 같은 말들이 많은 이에게 적합하여 태어났다 할 지라도 그 주체가 결코 나는 아니라는 걸 확연히 안다. 다른 어느 지역이 그랬다는 이유로 내 영역도 응당 그러리라는 식의 '기계적 복붙' (복사+붙여 넣기)은 가차 없이 빨간 마카 Cliche행이다.

「이때 이러한 목소리들은 일종의 유령과 같은 힘을 발휘해 판단을 내리는 순간으로 이주해 들어와,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확신이나 별생각 없이 자기만족으로 가득 찬 현실로부터 '잘못된 평화'를 앗아간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공간들이 인지된다.
(...)
그곳에서 지배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해방되고, 또 오늘날 이리저리 뒤얽힌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이 세상에 스스로를 등장시키도록 고무된다. 세상은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으며, 계속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 마리 루이제 크노트,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중 - 




게다가. 지나고 보니 정말로 그립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라서가 아니라, 아프니까 청춘인 건 더욱 아니라, 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몇 명이 똘똘 뭉칠 때 피어오르는 단단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다. 전우애에 가까운 동료애와 가끔씩 떠올릴 때면 마음이 뭉게뭉게 해지는 희로애락의 에피소드 같은 것들.

아이디어 회의한답시고 퀴퀴한 설계실을 탈출했더니 못 견디게 날씨가 좋아 한강공원에서 영화를 보고 만 어느 날.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진 않다. 결코.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발명된대도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거다. 다 지났기에 좋은 것들이 많다. 다시 한번 더 할 힘도 남아 있지 않고.

하지만 강제로 누군가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 다시 한번 졸업논문반과 졸업설계반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으로 데려다 놓는다면, 나는 열 번을 돌아가도 결국 설계반일 거다.


포토샵이니 일러니하는 기본 중의 기본 툴도 능숙하게 못 다뤄 팀원들에게 물어가며 더듬더듬 익혀 작업하고, 제대로 된 취업준비라고는 하나도 안 해놓은 탓에 자소서며 인적성이며 눈물을 쏙 빼가며 뒤늦게 준비하겠지만, 스윗소로우 멜론 라디오의 드립력에 깔깔 웃으며 다 같이 모여 밤을 새우는 일을  선택할 거다.


쓸모 따위에는 비할 수 없이, 그 선택으로 닿게 된 소중한 날들과 사람이 너무나 많기에.

지난 토요일, 여덟 명 중 한 명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팀 세 명은 한강으로 갔다. 그날처럼 봄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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