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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Sep 02. 2019

무조건과 진짜와 절대로의 세계.

세상의 모든 지상주의에게.

간호사가 들어와서 나에게 나가라고, 방문객은 아직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해서 난 그 애가 괜찮은지 물어봤어요. 간호사는 "아직 물이 차고 있단다"라고 대답했죠.

사막에는 축복이겠지만, 바다에는 저주죠.

- John Green, The Fault in Our Stars -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건 놀라울 정도로 갖가지다.

이런 것도 좋아한다고? 의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

바꿔 말하면, 어떤 걸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어떤 걸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특별히 없다.

그냥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독선적이고 오만해 보이는 고집을 열정이나 순수함이라며 좋아하는 이들이나, 잘 포장된 삶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삶을 관통하는 진리라고 여기는 이들은 늘 있다. 나는 늘 그렇게 여기는 이들에 속했는데, 그렇게 믿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그랬다.

인간의 믿음은 신기한 구석이 있어서 믿고 있을 때는 자신의 세상 모든 것이 믿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 한걸음만 나와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금사빠 - 매몰 - (수많은 반례와의 직면을 통한) 현타의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어떤 것 하나에 꽂혀서 그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지상주의자들을 이제는 믿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것의 자리에는 모든 것이 들어가곤 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과거에는 십자군 전쟁 참전이나 피라미드 쌓기도 들어갔다지.

나에게 자주 어떤 것이 되었던 것은 꿈이나 영혼이었다.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 혹은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늘 통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의 대부분은 본인과 그 어떤 것을 현재 좋아요 하고 있는 몇 사람에게나 중요한 것이지, 대부분 별 의미랄 게 없다. 이론 자체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맞든 틀리든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거다. 이론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그것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접근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다. 부분은 전체를 대변할 수 없고, 모든 사람과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가슴 뛰지 않고 섹시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일을 평생 하면서도 아주 섹시하고 행복한 사람은 많다.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사람 중에도 다른 이의 가슴은 쉬이 짓밟아버리곤 하는 파렴치한도 많고.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영혼의 목소리를 조금 낮춰야 할 때도 있다. 사막에의 축복은 바다에의 저주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일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흘러갈 것이다.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절대로'라는 말을 남발하는 시기는 축복받은 시기다. 때가 되면 온다. '절대로' 뒤에 오는 말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마는 시기가. (...) 때가 되면 안다. '절대로' 뒤에 오는 말들이 얼마나 쉬이 변하는지. 변할 수밖에 없는지. 이제 나는 '절대로' 뒤에 어떤 말도, 어떤 마음도 함부로 세우지 못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고 있으므로,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마음은 시간 속에서 변한다. 당신이 없어야 살 수 있다고, 변한다. 변할 수 있다.」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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