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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뽀끼 Sep 26. 2024

유리컵, 그게 뭐라고

잃어버린 취향을 찾아오는 일

실내 인테리어라고는 단 한 번 생각해 본 적 없는 신혼 때의 일이다. 나보다 조금 일찍 결혼한 친구 K의 집에 초대받게 됐고 별생각 없이 롤휴지와 딸기 한 팩을 사서 방문했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단지 내부가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자 초록빛 선인장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세월을 이기진 못했지만 여기저기 공들여 가꾼 K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화장실에는 금빛으로 된 선반과 촛대로 멋을 냈고 그 위에 소품들이 가지런히 올라가 있었다. 촌스러운 버건디빛 화장실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만으로도 낡은 기운이 사라진다는 걸 친구의 화장실을 보며 깨달았다.


K는 내가 가져온 딸기를 씻어 하얀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보기 좋게 진열된 딸기를 보고 있자니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당시에는 ‘홈카페’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전이었다. 나는 친구의 센스에 감동하며 이렇게 예쁘게 먹으면 집에서도 기분 너무 좋겠다고 칭찬을 거듭했다.


K의 집에는 작고 반짝이는 유리컵들이 많았다. 나는 평소 커다란 머그컵만 사용해 왔던 터라 K가 가진 다양한 모양의 유리컵들에 시선이 꽂혔다. 그녀는 내게 어떤 원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원두 취향 따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는 ‘아무거나 좋아’ 하며 대답했다. 잠시 고민하던 K는 두 번째 유리볼에 담긴 커피콩을 꺼내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주었다. 얼음을 잔뜩 넣은 투명한 유리컵 위로 진한 갈색 액체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지금은 sns만 켜면 커피 영상이 차고 넘쳐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생경한 충격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유리컵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기가 어려웠다. 검색도 해본 놈이 한다고(?),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던 거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유리컵 따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무렵, 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사러 간 집 근처 한 잡화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유리컵을 발견했다. 평범한 일자형 유리컵이 아니었다. 빨래를 짜듯 살짝 비틀어 구운 모양으로, 손으로 잡고 마시기에도 편해 보이는 유리컵이었다.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은 뒤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당시 집에는 친구가 선물해 준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새로 산 유리컵에 얼음을 가득 담고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담자 K의 집에서 본 그것과 같았다.

이토록 손쉽게 예쁘고 맛있는 걸 만들어내다니! 순식간에 뿌듯해졌다. 이런 기분 때문인지 홈카페는 꽤 유행하기 시작했고 카페에서만 보이던 유리컵들을 집 근처 매장에서도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완전히 매끈하고 투명한 것부터 울퉁불퉁하고 불투명하지만 구슬같이 반짝이는 것까지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컵들. '나 유리컵 되게 좋아하네?' 새로운 취향 하나가 추가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종종 아이와 함께 잡화점에 가서 하나 둘 컵을 사 모았다. 세트로 맞춘 것이 아니라 모습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그래서인지 더 소중했다. 물론 이혼과 동시에 애착 컵들과 작별해야 했지만.


친정으로 돌아와 맥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다이소에 노트를 하나 사러 갔다가 천 원짜리 유리컵을 보았다. 괜히 아이와 함께 유리컵을 고르던 기억이 나 울컥했다. 이내 씩씩하게 컵을 들고 계산대로 가져갔다. 줄을 서 있는 동안 ‘내가 지금 유리컵이나 살 때야?’ 하는 마음과 ‘날 위한 좋은 선물인 것 같아!’ 하는 마음이 투닥거렸다. 나는 승리를 공표하듯 “내 선물.” 하고 작게 웅얼거렸다.


집에 돌아와 컵 가득 얼음을 쏟아 넣었다. 차가운 물을 채운 뒤 에스프레소를 따랐다. 기다란 쇠 젓가락으로 얼음을 톡톡 건드리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금세 만들어졌다. 천 원 한 장으로 추억을 다시 사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유리컵을 향한 잔잔한 소비가 다시 눈을 떴다.


유리컵만을 위해 외출을 감행한 날도 있다. 전에 살던 집에는 이케아에서 여섯 개짜리 250ml의 유리컵 세트를 구매해서 아이용으로 구비해 두었었다. 그게 딱 제 손에 맞는지 물이며 주스며 항상 그 컵에 따라 마셨다. 친정에는 그런 작은 컵이 없어서 아이 손에 맞지 않는 커다란 컵만 쥐어주고 있었는데, 최근 유리컵을 사기 시작하면서 내 아이의 취향이 번뜩 생각난 거다. 부랴부랴 차에 시동을 걸고 이케아로 달려갔다. 여섯 개짜리 작은 유리컵 세트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 대체 유리컵이 무엇이관데, 이렇게까지 기쁠 일인가?' 싶으면서도, 컵을 쥔 아이의 손이 그려지며 웃음이 났다.

아이는 컵을 다시 샀느냐며, '이거 내 거잖아!' 하며 신기해했다. 알아준 것이 고마워 '네 생각하며 샀지!' 하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배시시 웃던 아이 얼굴이 도장처럼 내 맘에 아로새겨졌다.


혼자가 된 뒤로 내 취향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게 됐었다.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에 숨 죽이고 살았던 거다. 이제는 그런 내 마음을 조금씩 돌려세우고 있다. 내가 웃지 않으면 아이도 웃을 수 없다고 말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즐겁고, 명랑하게 살자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내 앞엔 여전히 아메리카노가 있다. 유리컵 한 잔에 담긴 나의 오늘치 즐거움이 찰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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