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 지성도 믿지 않는 감정배출의 시대
<범죄도시 3>가 개봉한 지 5일 만에 400만 명을 하더니 현재는 10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간 시리즈물로 나왔던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한 사례들을 생각하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속편이 거듭될수록 강력해지는 빌런들, 하지만 결국에는 대한민국 형사 마동석의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먼치킨적인 요소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다. 더불어 누구나 상상하는 악인에 대한 사적제재보다 공권력이 앞 서 그들을 소탕해 주니 아마도 현재 우리 사회에 불신들과 맞물려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범죄도시 3>은 개봉 전, 시사회를 다녀간 평론가들을 통해 10점 만점에 5~6점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시작도 전에 김을 빼는 것 같지만 평론가들의 점수는 다소 냉정한 면이 있다. 단순 재미와 웃음, 감동과 같은 직관적인 카타르시스에 의해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영화의 구성, 구조, 미학 등 각 평론가의 전문영역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유명 평론가 중에 한 분인 이동진 평론가의 3점짜리 평론이 화재가 되었다.
왓챠피디아의 평점은 10점이 아닌 5점 만점이다. 그래서 이동진 평론가가 다른 평론가들보다 더 혹독한 평가를 한 것은 아니며 비슷한 점수를 준 것인데 이 소식을 기사로 접한 일부의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약 10점 만점에 3점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 평론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어떤 기준인지를 궁금해해야지 3점이라는 점수에 매몰되어 평론가를 찾아가 악플을 달고 평론가로서의 점수를 채점해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일은 일어나고 있다. 자신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직관적인 느낌과 평론가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한 평가가 동일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몰지각한 생각이며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없는 행동인지 모르는 것이다. 평론가가 아닌 개인들도 평점이나 한줄평을 가지고 얼마든지 평론할 수가 있는데 그 자격을 넘어 평론가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면 다 아는 진보 패널이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다가 그들의 내로남불과 이중성에 치를 떨며 현재는 중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개봉했을 당시 100분 토론에 참여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디워>가 소위 말하는 '국뽕'으로 인기를 끌고 주목받을 때 선두에 선 전장의 장수처럼 나아가 <디워>를 비판했다. 당시 <디워>에 관하여 비판의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파란이었다. 영화가 영화자체로 평가 받기 보다는 '<신-지식인> 심형래가 새로운 기술로 만든 세계로 나아가는 영화'라는 프레임이 대중들을 삼킨 것이다. 메세지가 어떻든 메신저를 추종하면 그 메시지까지 추종해 버리는 어리석은 현상이었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린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비정상적인 현상을 보고 진교수는 "디워가 무슨 국가보안법입니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흥행성공이 꼭 그 영화에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디워>는 평론가들에게서도 대중에게서도 여러 면에서 외면받았다.
우리는 흔히 이타심에 기반해서 생각하고 말은 하지만 소비자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만이 평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이 "꼭 평론가들만 평론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답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론에 자격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독립, 예술영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대중들이야 취향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만 골라보면 그만이다. 그렇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주로 상업영화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평론가는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영화를 채점하여 시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예술영화들에게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준다. 간혹 너무 보수적인 입장인 나머지 예술에 점수를 부여하고 채점하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는데 점수가 없다면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인의 창작물까지 예술이라 불리며 정작 뛰어난 작품들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정말 영화를 매니악하게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1년에 독립영화 한 편을 볼까 말까 하다. 평론가들이 아니라면 정말 좋은 영화라도 소개받지 못한다. 시장에서 소비되지 못하면 그 영화는 소멸되고 감독과 작가는 그다음 영화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나마도 우리에게 독립영화가 친숙하게 된 것은 평론가들의 역할이 크다. 대외적인 평론가들이 일선에 나와 추천하게 되면 그제야 빛을 보는 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시각을 넓혀준다.
영화를 평가하려면 그에 관련한 공부들이 많이 필요하다. 영화를 만드는 원리부터 구성, 구조, 그 영상을 찍기 위해 필요한 인력, 기술들 등 거기에 더 해 각자가 중요시하는 부분들이나 전공들이 어우러져서 평론이라는 결과물이 나온다. 일반 사람들도 자신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영화들은 몇 번이나 다시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사를 외우기까지도 하는데 자신이 쳐해 진 환경이나 나이대에 따라서 같은 영화를 두고 다른 느낌을 얻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평론가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간접체험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식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를 보는 눈은 분명 더 넓어진다.
이처럼 평론을 하는 일은 우리가 단순히 평점을 매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백, 수천편의 영화를 보고 직업 전선에서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그들 앞에서 자격을 논하고 더 나아가 평론을 평가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도 팬이라고 자처하기만 하면 자격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국민이란 동일한 자격임에도 먼저 외치기만 하면 큰 무기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온 사회가 멍들고 아프다. 자격없는 사람들이 자격을 가지는 것과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새를 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치명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죄도시 3>을 재미있게 보고 나왔다. 속편이기 때문에 전작과의 비교는 불가피하고 그에 반해 다소 싱거운 면도 있었다. 반전이 있었으나 너무 빠르게 나와버려서 식은 음식을 먹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식어도 맛있는 음식이긴 했다. 그렇다고 "맛이 없었다." "재미없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평점을 주려 했다면 아마 '재미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8점 이상을 줬을 것이다. 주변에서 묻는다면 추천도 해줄 만하다. 겨우 12000원을 내고 내게 2시간의 재미를 선사한 영화를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범죄도시 4> 편이 나온다면 또 보게 될 것이다. 내 자격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당신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가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던가, 아니면 당신의 주제를 알던가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