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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Aug 12. 2024

다시 사랑을 얘기할 때

앱을 켜고 오후 날씨를 보니 35도다. 여름은 정점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어제 저녁 영화에서 본 바이칼 호수를 떠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담수호로 최대 깊이 1,642m. 대한민국의 1/3의 면적을 지닌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는 여름이 보고 싶다. 그래봤자 내가 아끼는 여름도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 입추가 지났고 미세하게 아침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기야 아~입 좀 벌려봐." 

"아"

"자기야, 이제 입이 많이 제자리로 돌아왔어. 지난 번보다 더 많이 좋아졌는데."

내가 보여준 반응과 상관없다는 듯 남편은 무표정했다. 작년 11월 두번째 안면마비를 겪고 올해 2월에는 망막박리수술을 하고 이달 말에는 시력회복을 위해 또 한번 눈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직장에서 업무 스트레스로 망가진 몸때문에 결국 퇴사까지 했지만 더디게 회복되어 가는 몸에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60%정도의 컨디션 수준이야. 이게 내가 꿈꾸던 퇴사후의 일상은 아니었다구"


올해 초  6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왔지만 그의 말대로 오자마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과 한의원을 들락날락했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사이 6개월이 지났지만 남편은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온종일 핸드폰과 노트북을 끼고 있다. 어쩌다 내가 뭔가를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짜증을 내거나 버럭 화를 냈다. 그 동안은 일때문에 스스로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고 변명을 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제서야 결혼한 기간과 상관없이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근해서 일과를 보내고 저녁 늦게서야 서로 얼굴을 보고, 주말에는 휴식모드로 지내왔으니 부딪힐 일이 일년에 한 두번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둘다 일을 그만두고 직장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난 뒤 배우자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서 오는 답답함을 호소할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 아침에 상대가 달라질 이유가 없는데 왜 그들은 힘들어 할까?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많이 들어왔던 하루 세끼, 밥상 차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침은 과일과 빵으로 점심과 저녁은 요리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음식을 약간 더 가공해서 먹고 있다. 더운 여름만이라도 음식만드는 것을 피하기로 했다. 냉면, 막국수에 된장찌개, 삼계탕, 미역국, 육개장에 조금 더 내용물을 보태어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것을 선택했다. 따라서 누가 밥상을 차리고 설겆이를 하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게 왜 안되지. 자기야, 이것 좀 봐줄래?"

"이렇게 하면 어떻게. 아무 생각이 없구만. ...."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부터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마음에 쓰였다. 내가 기대한 역지사지, 공감이 없었다. 어려움을 겪는 상대를 헤아려주는 아량을 기대했던 내 마음은 찬물세례를 받은 것 같았다. 남편의 소통방식을 그제서야 다시 깨닫게 되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얼마쯤 지났을 때 시부모님의 대화방식에서 적쟎이 놀랐다. 시아버지의 음색과 톤, 대화방식을 보고 알아차렸다. 공감과 연민이 없는 대화였다. 다행히 남편은 성격의 7을 엄마에게 가져왔지만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3이 예고없이 튀어나왔다. 이게 앞으로 내가 자주 부딪혀야 할 괴물처럼 느껴졌다. 태어난 기질이 공감이 부족할 수 도 있고 성장과정에서 부모에게 적절한 공감으로 피드백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게는 마음을 쓰지 않고도 저절로 행해지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도중에 쪼개지거나 부서져,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일찍부터 기질이든 성격이든 좋은 요소를 채워넣기 위한 노력은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동안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인내심이 정답은 아니었다.


세어보니 이삼일에 한번씩 부정적인 피드백이 날라왔다. 과연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을 무참히 깨고 아프게 날아오는 언어의 화살에 과녁이 된 내 심장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인내심을 평가했다. 아픈 말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고 결국 질병까지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언급하는 것이 과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텨주고 수용한다는 것은 다 받아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잘못알고 있었다. 상대의 정당하지 않은 요구는 제대로 거리를 두고 의식할 수 있도록 때로는 강한 시그널을 보여줘야 했다. 한마디의 말로 인해 상대가 얼마나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지 상황에 맞는 단호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했다. 


사랑이 애둘러 말하는 것이고, 덮고 넘어가고, 참는 것이라는 기존의 전략을 포기해야 했다. 그동안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아 결혼생활은 겉으로는 평온한 듯 지나갔지만 과연 결혼생활의 질이 그만큼 깊어졌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 까? 그렇게 17년이 지났다. 물론 한 사람이 참고 받아주고 지나가니 문제가 되지 않았고 상황은 쉽게 종료가 되었다. 하지만 어것 역시 위험을 회피하는 방식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부모, 형제자매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의 말하는 방식, 태도를 배웠고, 흉내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안에 새겨넣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것들도 자동화되어 생각과 몸이 하나가 되어 움직여버리고 만다. 말로 담기전 다시 한번 생각하고 필요한 말인지 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말 한마다의 씨앗이 상대의 심장으로 꽂히고 다른 이에게 다시 옮아가고 담장을 넘어 이웃으로 조직으로 확대되고 프레임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일을 쉬고 배우자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말하기를 신경쓰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부드럽게 주문한다. 그 감정에 호기심을 갖는다. 저 사람의 심연은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일까? 따라가본다. 어쩌면 바이칼 호수보다 더 깊이 내려갈 수도 있다. 그래도 말의 씨앗들이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묻고 찾아가 싹이 움트기전 원형의 씨앗을 만나보고 싶다. 


우리는 다시 신혼 초로 돌아갔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알 뿐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로의 감정의 롤러코스트에 올라 타 수십번 올라가고 추락하면서 제대로 만날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할 때인것 같다. 서로가 심어준 사랑의 말들이 건강하게 발아하여 경계를 넘은 꽃의 향기로 누군가의 가슴에도 닿기를 바란다. 겨울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여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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