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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Oct 10. 2024

너의 수면아래 빙산에 대해 말해줘

서로의 빙산을 탐색하는 과정

두번째 상담을 마치고 나왔다. 가슴이 후련했다. 지난 2주동안은 마음이 착잡했다. 많이 망설였지만 나를 최대한 오픈하기로 마음먹었다. 개인적인 문제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내담자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거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공부하며 이론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안정애착형이고 잘 분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 안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상담가에게 제기한 사람이 되고 난 이후부터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으로 머무를 수 없었다. 주호소문제였던 남편과의 관계를 곱씹어 보고 다시 감정의 역사를 훑는 과정은 괴로웠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을 오픈하는 수위를 결정하는것부터 장애물이었다. 큰 문제로도 보이지않고 지금 잘 살고 있는데 구태어 문제를 다시 끄집어 내어 직면할 필요가 있는지 여러번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3주전, 집에서 멀지 않는 심리상담연구소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상담가가 되려면 내담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 학교를 졸업하기전 내담자 경험이 필수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주호소문제로 제기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직장이든지 가정에서 갈등, 근심, 걱정, 위기상황에 처하고 불안, 우울, 무력감을 겪게 마련이니까.  "제 이름은 서00입니다. 상담일을 한 지는 삼십년쯤 되었습니다. ".  첫 날 상담자의 소개는 달랑 두 문장이었다. 내 앞에 앉은 60대 여성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50분의 1회기(접수면접) 상담에서 두 개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왜 이 문제가 현재 마음안에서 계속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 배경이야기를 하는데 제한된 시간을 모두 썼다.  "일주일을 보내면서 또 마음에 어떤 생각들이 찾아드는지 다음 회기에서 얘기해보도록 해요.".  개천절을 끼고 2박3일 짧은 여행을 하게 돼서 한 주를 쉬기로 했다.


그 사이 시간이 날때마다 지금까지 진정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비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남아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생각의 뿌리로 들어가보는 여정을 시작했다. 여러번의 우울이 왔고 인생을 헛 산것 같은 씁쓸함까지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사건들을 말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뿌리를 찾아 심연으로 들어가보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에 버럭 화부터 내는 완벽주의 남편과의 의사소통도 호소문제중에 하나 였다. 2주라는 시간이 더 무겁고 길게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2회기 상담을 마치고 상담실을 나온 후 기분은 "아, 털어놓기를 잘 했구나!. "였다. 문제를 내 언어로 털어놓는 순간 이미 스스로의 성찰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때는 경험이 많은 상담가가 어떤 비법을 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비법이 언제 쯤 나올까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그 처방으로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지!라고 섣부른 기대도 했다. 하지만 오늘 느낀 것은 우리는 상담을 시작하는 동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더 깊이 탐색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여정에서 주인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상담가는 그 길이 외롭지 않도록 내 뒤를 따라오며 내가 가끔 뒤돌아봤을 때 헛헛한 외로움을 날려줄 정도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상담실습 첫날 배운 '상담'의 정의를 그대로 깨우칠 수 있었다. 상담가는 단지 헬퍼(helper)일 뿐이다. 은 내담자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러면 두 사람간의 끈끈한 연대가 필요하고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상담가를 만난다할지라도 상담가에게 자신을 전혀 오픈하지 못하거나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면 상담의 목표는 이루어내기 어렵다.  상대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믿고, 기꺼이 지금 여전히 꺼지지 않고 불편하고 어려움을 주는 문제를 꺼내 보일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이것 또한 두려움과 맞서는 행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요일, 일주일을 보낸 소회를 어떤 언어로 담아내고 있을 지 상상해본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주일은 내가 나라는 사람을 드론처럼 따라다니며 내려다보는 '관찰자' 위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과의 소통방식, 사용하는 감정 언어의 빈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편과 내가 어떤 유형(회유형 Placating, 비난형 Blaming , 초 이성형 computing, 산만형 distracting, 일치형 leveling : Virginia Satir(1916-1988)의 5가지 의사소통 유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지, 어떤 수준으로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는지, 상대가 솔직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공감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알아차려보려고 한다. 사티어는 인간의 행동을 빙산에 비유하고 빙산의 표면위에 드러나는 행동이나 감정은 그 아래 감추어진 심리적 요소들의 결과라고 말했다. 수면 밑에는 감정, 지각, 기대, 열망과 빙산의 맨 아래 '나(self)'라는 본질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빙산을 탐색하고 상대가 내 안의 감정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전달법(I-message)으로 감정에 초점을 두어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도 집수리처럼 갈라진 틈을 메우고 가구를 바꾸어보고 더 편안한 이부자리를 고르는 일과 다를게 없을 것 같다. 서로의 부끄러운 점들을 용서해주고 보듬어주며 '참자기'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헬퍼가 아닐까?


세번째 상담에서 쌉싸름한 일주일의 감정의 풍경을 어떻게 쏟아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말들안에는 내 가치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언어와 행동뿐만 아니라 빙산의 가장 아래에 잠겨 보지못했던 진정한 내 모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상담이 중간을 넘어 끝인 12월 중반쯤에는 나는 내 빙산을 껴안으며, 나와 색이 다른 남편의 빙산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많이 수용하고 인정하며 삶을 조금 더 주도적으로 견인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상담가와 나, 우리는 어쩌면 휼륭한 파트너로 서로의 성장을 목격할른지 모른다.


"Problems are not the problem; coping is the problem."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문제이다.

                                                         - 버지니아 사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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