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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Mar 19. 2024

구토하지 않는 일상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섭식장애를 앓은 지 그 햇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섭식장애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고 많은 섭식장애를 앓는 분들이 겪듯이 거식과 폭식, 폭토와, 거식을 오가는 순서를 경험했다. [날 것 그대로의 거식증] 책을 출간한 후 내 몸무게는 50킬로를 넘겼지만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대대적인 폭토를 했고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살찐 모습을 부정하며 마른 몸을 동경했다. 주변 사람들은 살찐 내가 이제 건강해졌다며 기뻐했지만 사실 보이는 것만큼 건강한 상태의 내가 아니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새로 사귄 사람들에겐 내가 먹으면 씻어야 하는 병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구토를 숨겼고 (그런 강박을 가진 게 섭식장애를 가진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 책을 읽은 사람임에도 내가 구토하는 걸 모르게끔 각종 상황을 만들어 숨겼고 내가 폭토 하는 걸 익히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절식하며 건강해진 척 애썼다. 그런 변명과 거짓에 내가 갈 수 있는 지역과 장소는 더 제한적이 되었고 혼자 있는 날을 외로워하면서도 선호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분명 오래된 거짓말에 지쳐 섭식장애에 대해 낱낱이 밝히겠다고 글을 썼는데, 그럼에도 아직 건강하지 못한 나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 내겐 너무 큰 짐이었다. 나는 이런 병을 앓았고 책도 썼는데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지금은 이렇게 잘 지내.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무게감에 시달렸다. 병은 알릴수록 빨리 낫는다는데 나는 점점 더 내 마음속 지하실에 숨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완쾌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은 3일간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오며 구토를 하지 못한 며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원래라면 지인들 눈치를 보느라 먹지 못한 만큼 뱃속에 음식을 가득 욱여넣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거였다. 그때! 정말 별안간 일어난 일이었다. 나도 이 상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럴 재간이 없다. 정말. 별안간. 그냥.

아, 더 이상 구토하고 싶지 않아.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무 놀라워서 이 마음의 변화를 구구절절이 설명하여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말해주고 싶으나 그럴 능력이 부족해 몸과 맘이 동동거린다.

 그저 정말 단 한순간이었다. (물론 절대 한 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겹치고 겹쳐져 그날을 맞이한 것일 테니)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그렇다. 더 이상 구토하고 싶지 않다는 저 문장을 시작으로 나는 지금 24년 3월 19일까지 단 한 번도 손을 넣어 일부러 구토한 적이 없었다. 4월이 되면 나는 일 년 동안 구토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러셀사인이 가득하고 앙상한 오른손
러셀사인이 모두 사라지고 오동통 살도 오른 기적의 손



그 사이의 엄청난 변화가 많았지만 가장 자랑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바로 이 손등. 이제 토하지 않기에 상처 투성이의 손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더불어 포동 해지기까지.


 1년간 구토하지 않을 수 있었던 마음의 힘에 대해 그나마 필사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섭식장애에 대해 논문 쓰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질병에 대해 회의적이셨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끝은 오나요. 애를 낳으면 고쳐질 줄 알았는데... 심지어 구토를 이용하는 삶을 사시는 분도 계셨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나에겐 신기할 정도로 다른 연구자들과 와는 다른 어떤 부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 분과의 첫 만남에서도 나는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구토를 할 것인가 말 것 인가를 고민했다. 결국 구토를 하고 택시 타고 왔다는 이야기를 나눴을 정도로 당시 나의 섭식장애는 강도가 깊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대다수 이야기의 끝을 항상 희망적으로 끝맺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엔, 그렇지만 언젠간,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아무리 현재가 지옥 같더라도 끝끝내, 일어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가 몇 년간 아무런 대외활동이 없었다 한들, 내가 더 이상 구토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몇 년은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그건 모두 나를 지켜내기 위한 일들이었다고.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워하면서도 글썽이는 눈이지만 그럼 에도라며, 웃어 보이거나 혹은 비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해왔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이런 노력을 일 번으로 꼽을 만큼 스스로를 믿어주고, 누구보다 기다려주고,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음으로 회. 망. 을. . 치. 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던 것 같다. 행여 누가 "너 이제 어떻게 살래. 너 이러는데 널 누가 만나겠니. 평생 이렇게 살겠지.. 쯧쯧" 같은 말을 들을 때에도 나는 내 미래를 부정적으로 확정 짓는 것이 기분 나빴지 무작정 나를 비난하는 것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미래는 그래도 희망이 남아있는데 왜 내 미래를 남이 결정지어. 그런 결정권까지는 아직 넘겨주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바둥 되었던  것 같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나를 믿고, 절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마음이다.

언젠간, 이겨낼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 물론 매일 밤 머리를 양변기에 부딪치며 울며 포효하던 날이 수도 샐 수 없고, 이 지옥이 영원할까 봐 두려워 울부짖었지만 ) 그럼에도 이걸 졸업하는 날이 언. 젠. 가. 는. 올 거라는 굳건한 믿음. 그 마음이 모여 오늘이 되었다.

나조차 반신반의하던 마음이었지만 그 끈을 놓지 않았던 일. 아주 많이 칭찬하고 싶다.


 사실 책으로 출간된 글들도 살펴보면 나 스스로 작위적이라 생각할 만큼 매 챕터마다 어떻게든 끝을 희망차게 끝맺으려는 것에 대해 고민한 흔적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내 마음의 희망이 넘쳐흐르는 걸 어찌하지 못했던 거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섭식장애의 늪에 빠져있다더라도 그 깊이가 콧구멍을 넘어 눈만 껌뻑이고 있는 상태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이 늪을 벗어나 진흙을 씻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말자.

그렇게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있으니 더 희망을 놓지 말자.


 우리는 의지에 대해 많은 말을 나눠왔다. 이 병을 이겨내는데 의지는 어떤 역할일까. 과할 수 없고 과해서도 안되지만 없으면 절대적으로 안 되는 그놈의 의지. 나를 비난받게 하는 그놈의 의지. 하지만 이렇게 좋아지고 나서 돌이켜보니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속의 빛을 꺼트리지 않는 힘. 그것이 가장 큰 무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아직도 섭식장애와 동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명확히 건강을 향해 달라지고 있는 것들이 있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젠 이 병으로 인해 적어도 죽지는 않겠구나. 살아남겠구나. 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 나는 섭식장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이젠 정말 섭식장애란 아이와 어떻게 조율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들려주고 싶다.

생존하면서 겪은 생각과 느낌들, 그리고 육체적 변화들까지도. 


다들 그동안 살아계셔 주셔서, 힘들지만 싸워 이겨내 주셔서 감사드리고 그런 제게 보내는 감사함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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