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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Oct 16. 2020

제3부 11화 진정한 아름다움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예뻐졌다고 말한다. 속으로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 두려움은 어김없이 딩동댕을 울린다. 사람들은 예뻐졌다 뒤에 '살이 찐 것 같다'를 덧붙인다.

 여전히 건강해지고 싶지만 살찐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람들의 '살쪘다'는 말,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듣기 시작했다.

살이 쪄서 더 예뻐졌어요.
살이 오르니 얼굴이 한층 더 생기로워 보여요.


 예전에는 이런 말들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로지 <살쪘다> 이 한마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른 말들은 무시했다.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랬던 내가, 조금씩 상대가 보내는 진짜 메시지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의 진심들이 내 귀를 통해 머리를 넘어 마음까지 흘러왔다.




 다음은 내가 실생활에서 진솔하게 변화를 느꼈던 부분들이다.


1.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을 1 kg 단위로 귀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지인이 있다. 얼마 전 그 지인은 내가 몇 년간 해온 스트레칭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기꺼이 그 지인을 위해 스트레칭 영상을 찍어 보내주었다. 지인은 그 영상을 본 뒤 유튜브에 올리면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몸무게는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한 후 최고치의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유튜버가 될 생각이 없다는 걸 뻔히 아는 그 지인은 지금도 예쁘지만 살이 더 찐다면 훨씬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제야 내 안의 속 시끄러움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2. 내게는 제일 작은 사이즈의 게스 청바지가 있다.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면 허리 23인치인 사람도 입기 어려울 만큼 게스의 사이즈는 혹독했다. 나는 스키니한 그 바지가 커서, 켜켜이 주름이 잡히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이렇게 작은 사이즈도 내게는 크다는 우월감을 즐긴 것이다. 지금은 살이 쪄서 바지가 딱 맞는다. 그러자 이 바지를 결국 못 입는 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거식증 졸업이 두렵듯이, 식이장애란 타이틀을 잃는 것이 두렵듯이 가장 작은 사이즈의 바지를 입는 우월감을 버리기란 어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한 지인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스키니 진은 그렇게 꽉 낄 때가 정상인 거라고, 벗기가 힘들 정도로 딱 맞을 때가 가장 예쁘다고 말이다. 지인의 말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꽉 끼는 청바지를 입는 것에 다행히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이 바지를 넘어 더 큰 사이즈의 바지를 입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아쉬움과 두려움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새 청바지를 입을 수 있기를 바란다.


3. 나는 무조건 하얀 피부가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대뷔 초부터 지금까지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유자인 이효리를 보면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부색 따위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얀 피부가 아니어도 아름답고 생기로운 사람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일부러 선탠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한 가지 사고에만 갇혀 오로지 그것에만 집착하며 다른 모든 것들을 부정해왔다. 허나 지금은 그것이 틀린 일이라는 것을 안다. 누구나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태어나며 콤플렉스도 개성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 콤플렉스를 부러워할 수 있다.


4. 트와이스의 멤버 사나는 데뷔전에 GOT7 (갓세븐) 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었다. 그 후 그녀는 잠시나마 연예인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 사이 사나는 살이 쪘다. 한 인터뷰에서 사나는 그 시절 더 이상 연예인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연예인, 아이돌이란 직업의 조건 중 하나가 몸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나의 다이어트 전후

예전이었다면 '그것 봐, 역시 살을 빼야 해.'라고 생각했을 거였다. 허나 찬찬히 생각해보니 반대로 일반인은 연예인처럼 혹독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일반인은 그토록 가혹한 제중 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타고난 체질과 상반될 정도의 깡마른 몸매를 굳이 고집할 이유를 하나라도 댈 수 있는가? 더 이상 나는 이 질문에 타당한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연예인들의 마른 몸을 매일 소비하면서 자연스레 그런 몸을 이상화할 순 있겠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이상이라고 부른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넘은 거식행위는 나를 괴롭히는 일이고 나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5. 생각해보면 내가 화장에 집착할 수도 있는 거였다. 예를 들어 꼭 강남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아야 한다던지, 가부키 화장을 고집한다던지 혹은 전신을 분홍색 아이템들로 치장을 해야 한다던지 말이다. 이런 것들에 집착을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나는  ' 굳이 비싼 숍에서 매번 메이크업을 받을 이유가 있을까? 진한 화장보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화장이 더 예쁜 것 같은데, 화장으로 감추지 않은 본연의 얼굴이 훨씬 아름다운걸, 분홍색이 좋다면 한 두 가지의 포인트로 분홍색을 착장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체중 역시 이와 같은 거라 생각한다. 나의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답이 더 쉽게 보였다.




 슈렉의 피오나를 보자. 저주에 걸린 피오나는 괴물인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저주를 풀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공주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인지 괴물의 모습이 자신인지 헷갈려했다. 영화는 결국 날씬한 공주의 모습이 저주였고 과물의 모습이 원래의 피오나의 모습이라는 반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마녀는 왜 그런 주문을 걸었을까?



 혹시 지금 내가 그런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닐까? 피오나는 괴물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나 역시 본연의 나로 살아가기 위해 저주를 풀려는 용기를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진정한 내가 되어 살고 싶지 않은가? 억지로 만들어낸 해골 같은 몸이 아닌 다른 공주들처럼 (연예인들처럼) 날씬한 몸이 아닌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토마스 캐시는 거식증 환자들이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오로지 체중과 외모를 통제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러했었다. 그러나 외모에 집착하는 것 만으로는 내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외모 외에 관심을 줄만한 재미나고 즐거운 일들은 넘쳐나고 우주의 아이인 나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아무것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름답다. 내면을 가꾸고~ 따위의 말까지 가지 않아도 살아 숨 쉬는 내 존재 자체가 이미 아름다우니까.  

 예쁨을 넘어 진정으로 아름다운 내가 될 거다. 내 존재를 받아들여주고 아껴주는 것, 이미 아름다운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누군가 내게 꿈을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저의 꿈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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