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우주 Sep 19. 2022

반려동물 장례 : 우리에겐 더 나은 의식이 필요하다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2] Ⅱ. 죽음에 대하여 ⑪ 끝

내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식(式)이라 할만한 장례를 치를 것이다. 사람처럼 장례식장을 빌려 조문을 받고, 거한 식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마지막 숨을 내쉰 집에서 혹은 적당한 공간을 빌려 가장 가까운 이들과 소박하고 따뜻한 애도 의식을 하고 싶다. 먼 길 떠나는 아이를 정성 다해 배웅하고, 아이가 남긴 사랑의 기억을 잘 매듭짓는 의례로써 말이다.


부고를 띄울 테지만 무차별 살포는 아니다. 뜬금없는 누군가의 부고 문자에 찝찝함을 느낀 일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고인 또는 가족의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로 일괄 발송한 것일 텐데 받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장례식이 고인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상주의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행사로 변질되면서 이런 문제를 낳는다.


아이가 생전 다정하게 인사 나눈 이들에게만 소식을 알리고 함께 아이를 추억하겠다. 투병기간 서로 응원과 위로를 주고받은 이들(아마도 환묘 카페 집사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 장례식에서 따올만한 의식은 없고 특별한 종교도 없어서 내식대로의 애도가 될 것이다. 아이를 향해 편지 쓰고 낭독하기, 물건 나누기, 아이 이름으로 기부하기, 종이비행기 던지기 등을 생각해봤다. 

 

인간은 생의 주요 단계에 의식이란 것을 치른다. 관혼상제가 그렇다. 장례식은 망자가 살면서 맺은 연을 정돈하고 떠나는 의례다. 또한 그 여정을 함께한 가족을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특히 보호자들은 장례 뒤에 일상으로, 소중한 존재가 사라졌으나 산 사람의 의무로 가득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장례의식을 통해 충분하고 적절한 애도를 하는 것이 일상으로의 복귀에 큰 도움이 된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면서 보호자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고 슬픔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혹여 아이의 죽음을 향한 자책과 후회를 덜 수 있도 있을 것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사람의 장례는 간소화가 추세 혹은 지향이 되어야 하지만 의식이랄 것도 없이 서둘러 종결되는 반려동물 장례는 반대다. 우리에겐 더 나은 의식이 필요하다.


외국의 장례식 풍경을 떠올리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통상 사흘간 조문 위주로 장례를 하고, 가족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입관할 때나 고인을 잠깐 마주한다. 미국 영화를 보면 특정한 일시에 장례식을 진행하고, 이때 지인들이 와서 고인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꽃 장식한 관에 누운 고인에게 꽃을 건네고 키스를 하기도 한다. 이는 시신 보존처리 과정인 엠바밍(embalming*주1)을 거쳐서 가능한 의식이다.

 

동물은 사람으로 치면 가족장, 무빈소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집이라는 장소가 곤란한 측면도 있다. 사람은 장례식장을 빌려 통상 3일장을 치르는 동안 고인을 냉장실에 안치해 시신의 변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집에서 치르는 동물 장례는 이 부분이 문제다. 

 

화장장에 가기 전까지 반려동물의 주검은 상온에 있다. 더운 여름이라도 실내온도를 잘 관리하면 하루이틀 집에서 함께한 뒤 보내도 된다고는 한다. 이때 부패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아이스팩을 사체 아래 두는 게 보통이다. 나는 한여름에 아이를 보내 이튿날 오전 화장했다. 더 데리고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혹여 부패한다면 큰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란 불안감이 컸다. 화장을 서둘렀고 한동안 한이 됐다. 


사람처럼 장례에 정해진 과정(주검을 닦는 수시, 이후 수의를 입는 염습, 염한 고인을 싸매 관에 넣는 입관 등)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보호자들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데리고 있는다. 하루 이틀 함께 잠자고 생활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비(非)반려인들에겐, 특히 사람의 시신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과의 관계는 그만큼 각별하고 애틋하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사체는 현행법령에서 생활폐기물로 분류하기 때문에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함께 했던 동물을 그렇게 보내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임의로 야산에 묻거나 사체를 태우는 것은 금지다. 반려동물장묘시설이 대부분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다. 추가 비용을 내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근엔 추모시설을 갖춘 차량이 와서 차 안에서 추모의식을 하거나 아예 화장 설비까지 갖춘 차량이 와서 화장을 해주는 서비스도 생겼다. 나는 이런 방식이 '인스턴트 장례식'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필요한 보호자들도 있을 테고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 같다. 

 

사람은 장례식장(빈소)과 화장장이 분리되어 있다. 장례식장에서 입관 후 발인을 거쳐 화장장으로 간다. 동물의 경우 '동물 장례식장'이라 부르지만 실은 화장장이다. 화장 전에 잠시 장례의식을 할 수 있게 추모실을 제공한다. 이때 일종의 부가서비스로 사람처럼 염습, 입관을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종류(당연히 가격도 다양하다) 수의나 관을 선택할 수 있다. 비싼 수의나 고급 나무 관도 있는데 보호자의 선택이지 의무는 아니다. 보내는 길에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클 테지만 종이로 된 관, 한지 등으로 간소하게 하는 게 지구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구에 가장 해를 덜 끼치는 방식으로 떠나고 싶다. 


화장 후엔 유골을 함에 넣어 간직하거나 예쁘고 관리하기도 좋은 보석류(스톤 등)로 만들 수 있다. 수목장, 해양장 등 자연으로 보내줄 수도 있고 유골의 일부를 화분에 넣어 식물을 기르는 화분장을 하는 보호자도 봤다. 나는 여전히 유골함에 아이를 데리고 있다. 3년상을 하고 수목장을 할 계획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다. 소중한 존재의 흔적이 일상에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화장장에서 돌아오는 길 찍은 사진. 아직도 아이를 간직하고 있다.

세련된 공간을 갖춘 장례업체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반려동물 장례문화라 할만한 것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내밀한 사적 관계였던 탓에 공적 애도 기간도 허용되지 않는다.(*주2) 펫로스를 흔히 인정받지 못한 슬픔, 박탈당한 슬픔이라 부르는데 반려동물의 죽음을 개인적 차원의 애도로 가두는 사회가 고통을 심화시킨다. 반려인에겐 가장 내밀한 가족이지만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관계는 아니다 보니 혹여 유난을 떤다는 비난, 손가락질을 받을까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 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구조에서 노인이 급격하게 느는 것처럼 노령동물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창때의 미미를 떠올린다. 젊고 아름다운, 에너지 넘치는 동물을 반려하는 이들은 언젠가 늙어질 내 아기를 떠올리기 어렵다. 노화는 생의 어둡고 불쾌한 단계로 받아들여진다. 누구도 굳이 늙음을, 죽음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혹여 그런 날이 오더라도 무지개다리 앞을 서성이는 아이를 꼭 붙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 다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어도 못 보내>라는 사랑 노래는 다시 쓰여야 한다. “죽을 만큼 사랑해”, “죽도록 사랑해”라는 애끓는 사랑 고백도 마찬가지다. “너의 죽음을 함께할 만큼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랑. “너의 죽음을 내가 잘 돌봐줄게”,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너를 잘 보내줄게”라는 다짐.  동물에게든 같은 종 인간에게든, 또 무엇에든 나는 이것이 최상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반려동물이 숨을 거두었을 때 할 일 

1. 몸을 가지런히 해준다 : 사후 경직이 일어나기 전에 잠자듯 편한 자세로 눕힌다. 동물이 숨을 거두면 한두시간 뒤부터 몸이 굳는다. 그전에 조심스럽게 눈매를 매만져 눈을 감겨주고 편한 자세를 잡아준다. 

2. 몸을 깨끗하게 해 준다 :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 몸을 부드럽게 털의 방향으로 닦아준다. 입이나 항문에서 분비물이 나올 수 있으므로 패드를 깔아준다. 

3. 충분한 애도 후 장례를 치른다 :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 업체정보 → 동물장묘업 게시판)에서 정식 등록된 동물장묘업체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알기 쉬운 반려동물관리와 장례실무> 윤귀향, 최시형. p.184 참고


*주1 : 우리나라에서도 더러 엠바밍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사후 엠바밍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더운 여름 봉하마을에 안치할 냉장시설이 마땅치 않아 7일의 장례기간 엠바밍으로 시신을 보존했고, 김 전 대통령은 입관식에 앞서 엠바밍 후 고인을 공개했다. 이를 'viewing'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고인을 보고 원한다면 스킨십을 할 수도 있다. 

시신을 보고(viewing) 접촉하는 것은 미국 등에서 보편적인 장례 절차다. 고인의 몸은 보존처리(embalming)에 더해 생전 아름다운 모습을 재현한다. 또한 즐겨 입던 옷이나 멋진 복장을 차려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래 앓다 가거나 사고로 훼손된 시신은 복원작업·메이크업 등으로 온전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이렇게 실제 주검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 남은 이들이 죽음을 수용하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조문 위주(고인과 가족의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고 과시하는) 장례식과 다르게 애도와 추모에 방점이 찍힌 외국의 장례식이 여러모로 낫다고 생각한다. 


*주2 : 최근 반려동물 장례에 유급휴가를 주는 기업이 생기고 있어 반갑다. 최근엔 반려동물 돌봄(질병, 사고, 노령 등)이 필요할 때 연간 5일의 휴가를 보장하는 법안(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용선 의원 대표 발의)도 국회에 제출됐다.


*주 : 시신 처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제 매장에서 화장이 일반적인 방식이 됐다. 사람은 지난해 화장률이 90.5%로 처음 90%를 넘었다고 하는데 친환경 장례 방식으로 한번 더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시신을 태울 때 다이옥신, 중금속 등 환경에 유해한 물질이 다수 배출되기 때문이다. 

화장의 대안으로 수분해장, 퇴비장, 건조장 등 다양한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나는 한국계 미국인 이재림씨가 개발한 '버섯수의(버섯관)'에 끌린다. 버섯들이 시신을 분해해 퇴비로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2/0000032738?sid=104) 어쩔 수없이 화장을 한다면 종이관을 사용하고 수의는 평소 있던 면옷이나 가벼운 무명 옷을 입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이란 : 반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