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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Sep 23. 2022

동물의 죽음에 대한 인식 -1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6] Ⅱ. 책임에 대하여 ③

나의 할아버지는 여든여덟 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특별히 아픈데 없이 건강하셨다. 쓰러지신 뒤 병원에서 겨우 며칠을 앓고 돌아가셔서 동네에서도 호상이라는 말을 했었다. 당시 집에서 키우던 어미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임종 전날 식구들 모르게 새끼들 보금자리를 스스로 옮기는 일이 있었다. 경황이 없던 터라 가족들은 뒤늦게야 어미개의 행동을 알아챘는데 장례가 끝나고 며칠 뒤 다시 본래의 거처로 새끼 강아지들을 스스로 옮겨왔다.


요즘 같으면 동물의 특이한 행동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나올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벌어진 신기한 일에 대해 가족과 이웃들 모두 놀라는 한편 대견함을 칭찬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집안의 큰일을 감지해 그런 것이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녀석이 직감한 것이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분명한 사건인지 혹은 장례에 많은 손님들이 드나들면 아기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보통의 반려동물들이 인간의 죽음을 아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의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2007년 뉴잉글랜드의학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노인의학 전문의 데이비드 도사(David Dosa) 박사가 기고(*주1)한 <고양이 오스카>가 대표적이다. 오스카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의 한 재활병원에 사는 고양이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머리맡을 지키는 행동을 했다. 이 병원은 환자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고양이 몇 마리를 길렀는데 아기 때 입양된 오스카가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6개월령부터라고 한다. 오스카가 택한 환자들은 몇 시간 뒤 어김없이 임종을 맞았다. 오스카는 매일 여러 병실을 순찰했는데 오래 머무는 경우는 곧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곁에 있을 때뿐이었다.


처음엔 이 당황스러운 간택을 받은 환자의 가족들이 불길하다며 오스카를 내쫓기도 했지만 곧 고마운 일이 됐다. 의료진은 물론 환자 가족들도 임종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카의 이야기가 처음 의학저널에 실린 2007년에만 오스카는 환자 스물다섯명의 죽음을 예고했고, 2015년에는 1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오스카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는데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선 ‘죽음의 전령’, ‘죽음을 예고하는 저승사자’ 등 자극적인 수식어로 소개하기도 했다.

죽음을 예고한 고양이 오스카

오스카의 행동을 설명하는 가장 그럴 듯한 가설은 후각인 듯하다. 인간은 맡지 못하는 죽음의 초기 단계에서 나는 몸의 냄새, 임종 직전의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실제로 개는 후각을 이용해 마약과 지뢰, 실종자들뿐만 아니라 암세포도 찾아낸다. 훈련받은 개는 어떤 진단 장비보다 정확하게 조기에 암 덩어리 냄새를 맡아 환자를 골라낸다.(*주2) 뇌전증(간질) 발작이나 당뇨 환자의 저혈당을 감지해 경고할 수도 있고, 해외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 탐지견도 활약하고 있다.(*주3) 어떤 동물은 코앞에 다가온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는 추측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꼭 냄새가 아니더라도 동물의 육감은 인간을 뛰어넘는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큰 자연 재난을 앞두고 어떤 동물들은 떼로 거처를 옮기고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사람들은 이런 이상행동이 예지행동이라는데 큰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스카가 어떤 생각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의 머리맡에 올라가 골골송을 부르며 부비부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임종이 다가왔음을 의료진들에게 알리려는 행동이었을까. 삶의 마지막을 앞둔 이를 위로하려는 의도였을까. ‘죽음의 전령’이란 별명처럼 낯설 저승길을 인도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오스카의 머릿속을 알 길이야 없지만 정말 신비하고 매력적인 일이다.


동물은 생각하고 느낀다. 표현하고 행동한다. 사유와 감정, 이로 인한 반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물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거나 감정이 없는 존재라는 주장은 더 이상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얼마전 신문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봤다. 개나 고양이에 비해 미물로 치부되는 쥐, 인간을 위한 다양한 연구에 모르모트로 사용되는 생쥐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연구다.


표정이 있다는 것은 주어진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을 넘어 특정한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생쥐가 다양한 감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실험을 설계하고, 얼굴을 촬영해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는데 생쥐는 좋고 싫음, 역겨움 등 분명한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이런 내용은 2020년 3월 과학 분야 3대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려있다.(*주4)


이 연구를 소개한 칼럼은 쥐가 다른 쥐의 행동을 보고 학습하고, 낯선 쥐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려 애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전한다. 인간이나 일부 고등동물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회성이 쥐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가까운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생쥐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알고, 사회성을 갖춘 동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동물이 다양한 정서를 느끼며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인원, 돌고래 같은 포유류과의 고등동물뿐만 아니라 어류, 조류, 곤충 등도 그렇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매우 낯설었을 지식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서구사회에서 백인 남성만 온전한 인간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00년 전만해도 특종 인종과 성별은 열등하기 때문에 노예의 삶, 차별적 대우가 당연한 것이었다.


동물의 인지능력과 감정에 대해 다양한 관찰과 풍부한 해석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여전히 드넓은 미지의 세계다. 과묵한 동물친구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게 분명하다. 인간과 동물의 동질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지나친 의인화를 경계하라고 한다. 철없는 감성주의자들이 동물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해 낭만주의적 의인화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논쟁에 대해선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말을 빌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


“의인화 논쟁은 인간의 예외주의에 그 뿌리가 있다. 의인화 논쟁에는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우리의 동물성을 부정하려는 욕구가 반영돼 있다. 그런 태도는 인문학과 대부분의 사회과학에 남아 있는데, 이들 학문은 사람의 마음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사람과 나머지 동물들의 유사성을 거부하는 태도가 그것을 가정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거부를 ‘의인화 부정 anthropodenial’이라고 부른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서 어떤 존재인지 솔직하게 평가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우리 뇌는 다른 포유류와 기본 구조가 동일하다. 우리 뇌는 새로운 부분이 없으며, 다른 포유류와 동일하게 오래된 신경 전달 물질을 사용한다.”(*주5)


인간은 동물이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생물의 우두머리로 군림해왔지만 동물의 한 종(種)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만 특별하고 예외적 존재일 것이란 신념은 종차별적(speciesism) 선입견이다. 다른 동물의 행동, 감정을 인간의 것에 빗댄 해석을 부정하는 것은 과거 백인이 흑인(황인)을, 남성이 여성을, 주인이 노예를 대하던 태도와 다른 것일까. 똑같은 인간임을 부정하고 그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했던 인간들은 이제 비슷한 논리로 비인간 동물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은 아닐까. 포획하고, 가두고, 먹고, 편의대로 이용하는 대상에게 감정이나 생각 따위 없는 ‘짐승’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편리하니 말이다.


*주1 : A Day in the Life of Oscar the Cat. David M. Dosa, M.D., M.P.H.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p078108


*주2 : 영화 ‘베일리 어게인’의 속편 ‘안녕 베일리’에 이런 강아지가 나온다. 베일리의 일곱 번째 견생인 ‘맥스’가 주인공(씨제이)의 남자친구(우리나라 가수 헨리가 역할을 맡았다)의 암을 찾아낸다. 맥스는 다섯 번째 견생인 ‘몰리’였을 때 암 진단견으로 활약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그런 능력이 다다음 생에도 이어진 것이다. 이는 흥미를 위한 영화적 설정인 것 같지만 환생론에서는 실제 그렇다고 설명한다. 천재 음악가나 운동선수, 학자 등 보통사람이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전생에서부터 그런 능력을 갈고 닦은 것이 현생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주3 : 헬스조선 <코로나19 확진자, 개와 벌이 냄새로 잡아낸다>  2021.6.2.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346&aid=0000041151


*주4 : 경향신문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생쥐에게도 표정이 있다> 2020.5.6

Facial expressions of emotion states and their neuronal correlates in mice. Nejc Dolensek 등 Science  03 Apr 2020: Vol. 368, Issue 6486, pp. 89-94


*주5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2019, 세종서적. 이 책의 원제는 <Mama's Last Hug: Animal Emotions and What They Tell Us About Ouselves>, ‘마마의 마지막 포옹: 동물의 감정,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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