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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Oct 01. 2022

<집사의 일기11> 다시 쓰는, 내 사랑 미미에게-2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43] Ⅱ. 책임에 대하여 ⑧

미미가 내게 오던 날처럼 아주 덥고 습한 여름날, 금요일 저녁이었다. 고속도로와 꽉 막힌 시내를 한참 달려 아이들을 차에 실었다. 견묘생심을 몰랐을 리가. 내사랑 미미를 전 주인에게 구하듯 안고 오던 여름날이 떠올랐다. 마녀의 술수에 빠져 탑 속에 갇힌 공주님처럼 좁은 베란다에서 반년을 산 나의 예쁜이. 미미야, 네게 동생이 둘씩이나 생긴다. 엄마가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없어도 잘해야겠지?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너의 영원한 엄마이니까.


모녀를 데려오겠다 결심한 건 이름이 지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보고 온 지 나흘째 되던 날인가, 문뜩 홍주라는 단어가 둥실 떠올랐다. 붉은 구슬(紅珠). 아기 고양이는 노랭이로 불리고 있었는데, 녀석은 노랑둥이라고 하기엔 아주 짙은 레드 태비 코트를 입고 있다. 그리고 튀어나올 듯 둥근 눈이 구슬처럼 반짝였다. 홍주? 검색 엔진에 넣어보니 홍시를 홍주우심(紅珠牛心), 옛적에 그렇게 불렀다 한다.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아주 마음에 든다. 소의 심장이라니 무언가 멋지기까지 하다. 엄마 고양이는 홍시, 홍시가 낳은 딸 홍주. 그렇게 홍모녀가 됐다.


홍시, 너는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불임 수술을 하고 편안한 고양이의 삶을 살게 해 줄게. 홍주,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평생 엄마가 둘인 묘생을 살다니, 넌 큰 복을 타고난 게 분명한 고양이다.


난생처음 양손에 들린 이동장은 퍽이나 무거워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개선장군처럼 현관문을 열어젖혀 문 안으로 아이들을 들이밀고, 미미에게 곧장 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미미 너의 동생들이야, 조금 못 생겼지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아이들은 인사는커녕 숨느라 바빴지만 그렇게 얼렁뚱땅 상견례를 해치웠다.


그리고 며칠간 마음이 아주 무거웠다. 그토록 염원했던 가족 고양이가 생겼다. 하지만 놀랄 만큼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무거운 책임감'이란 클리셰가 이런 느낌일까.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압도하는 책임감에 한동안 침통하게 보냈다. 1년, 겨우 1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힘들게 미미를 보내고, 고양이를 덥석 들이다니. 어쩌려고 이 아이들을 내 삶에 불러들였을까. 하나도 아니고 겁 없이 둘이나 되는 생명을.

적어도 미미와 같은 엑죠틱 숏헤어라면 PKD-free를 비롯해 유전질환이 없어야 하며, 건강 상태를 확신할 수 있을 때만 데려오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었다. 이 알량한 다짐을 모녀에게 대입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자니 내가 너무 잔인해서 그만뒀다. 미미에게는 그랬던가. 결국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하고, 확신은커녕 건강에 대한 의구심을 가득 안고 고양이 둘을 끌어안았다. 성립될 수 없었던 다짐은 되려 벌이 되어, 두 놈 다 부실하기가 짝이 없다. 다행이라면 그 불안의 망망대해에 ‘그래도 괜찮다’는 작은 표지판이 보일 듯 말 듯 떠 있다는 것. 이제 나도 제법 능숙한 집사가 되었으니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고심의 일주일, 아이들을 위한 자리를 충분히 마련했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많은 용품과 먹거리를 사들이고, 서둘러 영양제를 주문했다. 얼마 안 되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수입과 지출 예상치를 여러 번 뽑아보고,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을 체크하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까, 하는 고민과 구체적인 실행들. 그 속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미미가 별이 되고 부유하듯 살았던 나는, 다시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것 같다. 애써 주운 동전의 앞면이 무거운 책임감이라면, 뒷면은 단정한 소속감이다. ‘난 이제 이 고단한 삶에서 도망칠 수 없어. 바로 여기서 이 두 아이들을 책임질 거야.’ 견딜 수 없게 목이 마를 때 마음껏 길어 올릴 조용하고 깊은 우물을 찾아낸 것 같다. 어깨의 보따리가 무거워 괴로울 때 더 큰 짐 덩어리를 짊어지게 되면, 과거의 짐은 짐도 아니게 되는 게 삶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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