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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Sep 26. 2022

"치킨? 오빠가 시켜달라고 했음 해주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축복받은 탄생은 아니었던거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감기약을 먹고 유산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다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는데, 아빠는 "아들 하나 있는데 뭘 하나를 더 낳냐"고 했다고 했다. 엄마에겐 시아버지였던 내 할아버지는 딸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아들이면 그만 낳으라고 하려고 했지"라며 아쉬움을 대놓고 드러냈다고. 


엄마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세트로 내가 얼마나 키우기 힘든 아이였는지를 하소연했다. 


"넌 죽어도 모유만 먹는 애였어. 오빠는 분유를 타서 줘도 잘 먹었는데, 넌 젖병을 입에 물리기만 해도 집어 던졌어. 돌이 돼 이가 나왔는데도 젖을 계속 빨아서 젖꼭지가 다 찢어졌어. 피가 나는데도 젖을 빠는 걸 보면서 내 딸인데도 가끔 무서웠다니까."


"어느 날은 우는데 머리카락을 네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면서 우는 거야. 너무 놀라서 들쳐 엎고 나갔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애가 성질이 고약해서, 지 성질 못이겨서 그러는 거'라고 해서 집에 그냥 들어갔지."


아이러니하게도 뱃속에 있던 날 부정했던 아빠는 세상에 둘째가면 서러울 '딸 바보'가 됐다. 아빠는 가끔 나에게 "오빠한테는 너한테 하는 것만큼 못해줘 미안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내가 하고 싶다는 걸 무리해서라도 해주시고, 엄마가 혼내면 뒤돌아서 달래준 것도 아빠였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는데, 저녁 급식 먹고 싫을 때 아빠한테 전화했다. 아빠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넘치게 시켜줬다. 


할아버지도 내 기억 속에서 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줬던 분이었다. 또래 사촌들이 주변에 여럿 있었는데 모두 남자였다. 엄마 아들을 포함해 사촌 오빠들은 나랑 놀아주는 걸 귀찮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좋은 장난감을 품에 안겨주셨다. 직접 팽이를 깎아 주시고, 개울가에서 탈 썰매도 만들어주셨다. 밥을 먹을 때에도 내 자리는 항상 할아버지 무릎 위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여섯살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어려 죽음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49제 후 엄마 꿈에 나타나 "우리 루모스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단다. 엄마는 그 말을 전하면서 "어떻게 장손인 오빠 얘기는 한 마디도 안하셨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의 젊음에 대한 푸념도 있었다. 


"오빠 낳고 나서는 살도 다 빠지고 날씬했는데, 너 낳고 나서는 살도 안빠지더라. 내가 이렇게 살이 찐 건 다 너를 낳아서 그런거야."


엄마 아들을 낳은 건 20대 중반, 나는 20대 후반에 낳았다. 호르몬도 다르고 여러 요인이 있었을 텐데 외모에 예민한 엄마는 평상 마른 몸매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한 게 나 때문이라는 듯 말했다. 


그 외모 집착이 나에게도 이어졌다. 평생 마른 체형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뚱뚱하다"는 말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딜 가도 "오빠는 날씬한데, 얘는 통통해요"라는 말을 하는 엄마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인생 첫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살에 강박이 있는지 모른다. 여전히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애 낳다고 그렇게 퍼지면 안된다", "사회 생활할 거면 잘 꾸미고 다녀라",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살이 안찐다"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중학교 땐 시험 끝나고 기분좋게 들어와서 "엄마, 치킨 먹고 싶어"라고 했더니 엄마가 "살쪄서 안 돼"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오빠가 시켜달라고 했으면 시켜줬을 텐데"라고 했다. 난 그때 치킨을 못 먹은 것보다 "오빠는 시켜주지면 넌 안 돼"라는 말에 더 상처받았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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