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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비루 Jun 27. 2024

세상에 없어서 더욱 전설이 되어버린 가수 ZARD

ZARD, 영원히 젊음으로 남은 사카이 이즈미의 이야기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했던 소녀 

일본 가나가와현의 고등학생이었던 카마치 사치코, 눈에 띄는 얼굴 때문에 인기도 많았지만 그녀는 소심하면서도 마이페이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선 그녀를 삿치라고 불렀습니다.


오오사와 요시유키(大澤誉志幸)의 곡 『그래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そして僕は途方に暮れる)를 좋아해서 자주 노트에 가사를 끄적였는데, 수업시간에도 가사를 끄적이던중 집중한 나머지 선생님이 오는지도 몰랐었다고 하죠. 머리를 콩 하고 찍혔는데, ZARD의 발판은 이때부터 다져졌던것 같습니다. 


음악에 더욱 빠지게 된 삿치는 3학년이 되면선 밴드 활동에 온갖 관심이 쏠렸죠. 속해있던 테니스부도 그만두고 밴드를 하고싶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밴드의 꿈은 실현되진 않았지만가수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전문대에 진학하고, 여느 사람들처럼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부동산 회사의 총무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평범하게 사는게 가장 힘들다고 하잖아요. 남들처럼 대학졸업후, 직장생활도 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마음 한켠엔 허전한 구석이 있었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오디션에 참여하게 됩니다. 


레이싱 모델, 그리고 가수의 꿈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됩니다. 꿈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스타더스트에 소속되어 카마치 사치코로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되죠. 원하던대로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지만 그녀가 생각한 모습과는 약간 달랐죠. 방송에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도에이 가라오케 퀸으로서 활동하게 되는데요. 약 3000여명의 경쟁자를 뚫고 가라오케의 퀸으로 뽑히게 된 삿치는 Wink나(One Night In Heaven), 나카모리 아키나의 (CARIBBEAN) 가라오케 비디오에 모델로 출연하며 활동합니다. 

이외에도 레이싱의 레이스퀸, 그라비아 모델이나 화보를 찍으며 활동하게되는데요. 언젠간 가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연예계일 이었지만 이 때의 파격적인 모습이 ZARD 시절에 다시 밝혀지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 시절 사시는 일이 끝난 뒤엔 동료와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요. 평소에는 말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얌전했지만, 노래할 때만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고 합니다. 또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며 대학시절 만든 노트를 동료에게 보여줬는데요. 노트엔 그녀가 만든 시들로 빼곡히 채워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절함은 항상 통하잖아요?!

1990년 비잉 나가토 사장을 소개받고 오디션을 보게 됩니다. 당시 오디션은 사실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b.b 퀸즈란 가수의 코러스 그룹을 뽑기 위해서였는데요. 만화 마루코는 아홉살의 주제곡을 부르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오디션에서 돋보인건 우토쿠 케이코란 여성이었습니다. 단독으로 노래까지 불렀지만 삿치는 오디션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잠재력을 본 나가토 사장은 고민 끝에 그녀를 다른 프로젝트에 넣습니다. ZARD의시작이었습니다.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록이요. 멜로디가 분명하고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있는 록을 하고 싶어요


1991년, ZARD는 「Good-bye My Loneliness」로 데뷔합니다. 이 곡은 최고 순위 9위로 20만장을 넘는 히트를 기록합니다. 원래 ZARD는 5인조 밴드였는데, 93년까지 4명의 멤버가 차례차례로 탈퇴하면서 결국 ZARD는 사카이 이즈미로 통용되게 됩니다. 비잉의 나가토 사장은 직접 ZARD를 프로듀스 해줬는데, 프로듀서로서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헤이세이에 사는 쇼와의 여자” 였습니다. 


쇼와시대라는게 아직은 덜 개방된 옛날 모습이잖아요. 쇼와 시대의 그런 수수한 이미지를 노려서, 사카이 이즈미는 노메이크업에 귀걸이 등 악세서리도 좀처럼 하지 않는 투명한 이미지를 굳혔죠. 


그리고 그 컨셉은 대중에게 먹혔습니다. 


사실 컨셉도 컨셉이지만 조용하고 수수한 그녀의 성격도 한몫했다고 생각되는데, 한번은 나가토 사장이 그녀를 소개시키기 위해 약속자리에 데리고 갔는데, 상대방이 전혀 그녀가 ZARD인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죠. 이미 그 때 꽤나 잘나갈 때였는데, 수수하고 조용한 사카이의 모습에 이런일은 꽤 빈번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ZARD 그리고 의도적 신비주의

나가토가 이끄는 비잉은 1990년대 J-POP의 한 축을 담담했던 제작사입니다. ZARD를 필두로 B’z, WANDS, BOOWY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있었죠. 비잉계열 아티스트들은 방송출연을 자제하고 베일에 쌓인채 활동을 했는데요. 애니메이션이나 CF등에 주제곡으로 노래를 선보이며 오직 음악을 통해 가치를 향상시켰습니다.


이는 비잉의 전략이기도 했지만 , 노출이 적었던 이유는 컨디션과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넘어가면서는 컨디션 불량으로 백스테이지에서 나오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죠. 이런 상황에 나가토 프로듀서는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서 100%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ZARD의 스탭은 베테랑 보다는 젊은 디렉터나 디자이너를 선택해 그녀가 부담을 덜 느낄 수 있게 했죠. 레코딩 때는 유리로 된 보컬 부스를 커튼으로 가리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게 해줌으로써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이런 상황속에 탄생한 4th 싱글 '잠못드는 밤을 안고'가 45만장이 판매됐고, 이어지는 5th 싱글 'IN MY ARMS TONIGHT'도 30만장이 넘는 히트를 쳤습니다. 같은 달 발매한  정규앨범 HOLDME는 앨범차트 2위를 기록했습니다.초기엔 록적인 모습이나 사카이의 섹시한 모습도 의식하면서 제작하고 있었지만, 「HOLDME」에선  밝은 사운드로 채워넣었죠. 실연을 노래하는 애틋한 가사에서도 곡자체는밝게만들었고 이게 청취자들에게 받아들여집니다. 당시 ZARD의 지명도는 높지 않았음에도 밀리언 히트를기록했고, 이후 ZARD의 방향성도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6번째 싱글 마케나이데로 대히트를 칩니다. 4주만에  첫 오리콘 차트 1위를 획득했고, 밀리언셀러를 넘어 165만장을 팔았죠. 

ZARD를 정상으로 올려놓은 곡인 ‘負けないで'(마케나이데)는 1997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일본 야구 경기에도 자주 등장하며 일본 국민 응원가로 자리잡습니다. 러브송이 아닌 다른 곡을 만들고 싶었던 사카이 이즈미가 이 곡을 듣고 왠지 응원가 같다면서 작사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버블이 터진 후 경기 침체를 보이고 있을 때였는데 이 곡의 활기찬 리듬과 희망찬 가사로 사람들을 북돋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8th 싱글 「흔들리는 마음」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이 두 곡을 수록한 앨범 4집은 「흔들리는 마음」은 220만장이나 팔려나갔고,  연간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대스타로 발돋움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변함 없었죠. 


지하철을 타고다니는 슈퍼스타

그 전과 같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레코딩 하러 왔고, 레코딩이 심야에 끝났을 때는 택시나 직원의 차로 돌아갔다고 하죠. 자드는 오사카에서 레코딩을 많이 했는데, 기본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신칸센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먹는것도 그랬죠. 녹음하고 있을 때는 근처 가게에서 BLT 샌드위치를 시켰고 오므라이스도 시켜먹었었고 만두랑 볶음밥을 시켜서 녹음 중간 중간 먹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생기는 스타병이나 허세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꾸준히 인기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90년대 후반에도 히트 행렬은 계속 됐는데...슬램덩크의 엔딩으로 유명한 마이프렌드, 드래곤볼 gt의 엔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됐던 “Don't you see!"가 인기를 쓸었고 


Don’t you see 발매 한달만에 낸 君に逢いたくなったら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담인데, 이 곡은 아무로나미에의 can you celebrate에 이어 일본 최고의 결혼식 축가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특히 7번째 앨범인 Today is another day부터는 직접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는데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에 비비안 리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 대사를 힌트로 만든게 “Today is another day”었죠. 말과 단어에 욕심이 많았던 그녀는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전성기였죠.이 때 낸 싱글과 앨범은 1위거나 아니면 2위를 차지했습니다. 

TV 출연도 잘하지 않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그녀였지만 90년대 앨범 판매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발매한 앨범 9개가 모두 밀리어셀러를 달성했습니다. 특히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궤적~』(1999년) 303.4만장

『흔들리는 마음』(1993년) 223.9만장

『ZARD BLEND~SUN&STONE~』(1997년) 200.5만장

『OH MY LOVE』(1994년) 200.2만장

forever you (1995년) 177.4만장

『TODAY IS ANOTHER DAY』(1996년) 165.5만장

『ZARD BEST~Request Memorial~』(1999년) 149.6만장

영원 (1999년) 114.9만장

『HOLD ME』(1992년) 106.5만장


이로써 ZARD는 1990년대의 일본 음악의 한 획을 긋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합니다. 1990년대로  한정하면 아무로 나미에보다 더 많은 CD를 팔았죠. 


ZARD의 곡은 대부분 데모 테이프 더미속에서 뽑아 사카이가 작사를 하며 만들어졌는데요. 작곡가를 만나면 어쨌거나 작곡가를 신경쓰게 되고 이 때문에, 온전히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만들기 위해 나가토 사장은 작곡가와 ZARD를 만나지 않게 했다고도  합니다. 사카이는 곡을 듣고 가사를 붙이는 일에 천재적이었습니다. 이 곡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이렇게 작사를 해나갔습니다. 


being의 디렉터였던 테라오 히로시는 모든 스태프가 OK 해도, 납득하지 않으면 녹음하고 녹음하던 사카이의 집중력과 집착력이 성공의 요소라고 얘기합니다. 또 듣는사람의 시선에서도 많이 생각하는 그녀였는데요. 명탐정 코난 (극장판 수편성상의 음모) 주제가를 협의할 때는 만화를 보는 아이의 시선이 되어서  “숲속의 곰 같은데요"라며 곡의 이미지를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 눈높이에 맞춰 레게 리듬을 넣는 등 아이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끊임없이 작업했죠.  


불륜설과 염문설, 세상은 쉬운대로 생각한다

음악에 있어서 진심인 그녀였지만 끊임 없이 따라다니는 소문에 시달렸습니다. 언급했다 싶이 그녀는 신비주의였잖아요. 신비주의의 역기능은 없는 사실도 있는것처럼 퍼지고 마치 이런일들이 사실인냥 소문이 난다는거죠. 데뷔전 부동산 회사에 다닐 때 사장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얘기, 나가토 사장과의 염문설부터 가창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비주의 전략을 선택했다는 등 무수한 소문에 시달립니다. 그중에서도 AV 출연설의 소문은 치명적이었죠. 


악성 루머에 강력대응하고 명예회복을 하는 요즘에도, 악플 하나하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잖아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그 때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하고 생각하게됩니다.  

그런 이유때문일까요. 2000년대부터 몸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합니다. 2001년엔 데뷔 10주년을 맞이했지만 앨범을 낸 뒤(시간의 날개_9집) 컨디션 불량으로 1년간 활동을 중지합니다. 


활동 중지의 이유를 컨디션 때문이라고 발표하긴 했지만, 세상은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죠. 한 잡지사가 열애 파파라치 잡기위해 그녀를 미행했지만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거나 책을 사는 모습밖에 못건졌다는 후문입니다. 


다음년도에 복귀해 ZARD 제 2막 스타트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활동을 재개했고, 데뷔 14년만에 전국투어를 개최,노래도 발매하며 제 2막은 안정적으로 자리잡는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2막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입원을 위해 촬영을 못할것 같습니다


사실  2006년에 자궁경부암이 발견돼 수술한 상태였죠. 2006년 PV 촬영 직후에 컨디션이 안좋아져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간적이 있는데 이 때 자궁경부암이 발견되어 한차례 수술을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암이 폐로의 전이된 것이 발견됩니다. 


영원히 젊음으로 남게된 ZARD


상황은 암울했지만 앨범 발매와 라이브 투어를 위해서 계속 시를 써나갔는데요. 살이 빠져서 30kg 대까지 왔지만 입원중에도 끊임없이 가사를 써나갔었죠. 이런 상황이었지만 입원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죠. 여느때처럼 휴지를 하고 다시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는데요.


2007년 5월 허망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병원에 입원중에 높이 3미터의 슬로프로부터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죠. 향년 40세. 혼자 있었던 순간 난 사고였기 때문에 마지막이 어땠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처음에는 자살로 보도되기도 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한 결과 사고사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녀가 떠나기 2일전 나가토 사장은 전화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퇴원하며 녹음하자"그녀를 기리기 위한 음악장에는 4만 100명이 그녀의 가는길을 배웅했습니다. 이 조문자수는 hide(약 5만명), 오자키 유타카(3만 7,000명)에도 필적하는 숫자였죠. 


그만큼 사카이 이즈미가 세상에 남긴 것은 엄청 났던게 아니었을까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여러분께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전해질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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