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앞에 나서지 말고 한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처분만을 기다리라는 뜻이죠. 저희는 그걸 깨뜨리기 위해 싸우고, 자료를 모으고 했던 거예요.
별안간 내가 메고 다니는 가방이 허전해 보였다. 이상함을 느끼고 얼른 살펴보니, ‘그날’ 이후 항상 가방에 매달려 나와 여정을 함께 했던 노란 리본 열쇠고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잠깐 짬을 내어 부스에 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의 비극을 더욱 더 많은 사람이, 더욱 더 오래 기억하도록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했던 세월호 기억 공간은 마침 시장이 바뀌며 유동 인구가 훨씬 적은 서울시의회 앞으로 옮겨갔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대한항공의 민항기가 소련에 의해 격추당한 1983년 9월 1일. 그때 시각이 멈춘 넋들을 뜬금없이 천안의 ‘망향의 동산’ 구석에서 위로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은 양재시민의숲 한편에 있다. 심지어 성수대교 참사 위령비는 자동차 도로가 가로막고 있어 도보로 이동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개인이 지닌 흑역사를 잊으려는 본능처럼, 사회도 지우고 싶은 사건을 이렇게 얼른 잊으려 했다. 곧 사건은 사라졌다. 사회는 마치 삐죽 튀어나온 새치에 흑채를 뿌려 가리고는, 이제까지 검은 머리였고 앞으로도 검은 머리만 나오기를 기대했다.
잊고 싶겠지. 치부는 덮고 싶겠지. 안타깝게도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개인의 잘못과 체계의 부재가 낳은 상흔은 도통 아물 줄을 모른다. 열흘 전 일어난 또 하나의 참사를 떠올리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회사는 이름을 바꾸고 일을 이어나가겠지. 책임자는 아무도 없고, 나온다 한들 솜방망이 처벌 뿐이겠지.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서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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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죽음을 목도할 때마다 살아있음이 괜히 죄스럽다. 구태여 이런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는데도 말이다. 나한테 비극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아직은 운이 억세게 좋기 때문이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저들의 몫까지 힘껏 살아내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미래에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될지 아직 암담하기만 하다. 허나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적어도 내가 책임을 지고 있는 영역 내에서 안전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게 만들고 싶다. 내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은 이러한 결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천명하는 나만의 징표이자, 안전한 세상을 위한 작은 외침이다.
한국사학과 답사로 남도를 여행했을 때, 목포신항에 들러 인양된 커다란 세월호를 보고 멀리서 눈물 흘렸던 날이 생각난다. 모든 학생이 울고 있을 때 오히려 어깨를 토닥이며 ‘울어주어서 고맙다’던 유가족. 그들은 당신의 슬픔도 추스를 여유조차 상실한 채로, 진실을 위해,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 시선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는 재단의 행보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