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집 새해는 4월부터

회계사 부부의 4월

by 김호누



짧디 짧고 달디 단 봄방학


3월, 여의도는 벚꽃 축제를 준비할 때에 나는 아직 2024년 겨울을 살고 있었다. '저 꽃이 조금 더 버텨줘야 나도 꽃놀이를 갈 수 있을 텐데'하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쳐내다 보면, 기다리던 3월 31일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주주총회를 마쳤고 기말감사도 끝이다! 유후~! 내가 담당한 한 회사가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아 보고서가 기한도 없이 연기되었지만, 일단은 잠시 잊기로 했다. 벚꽃은 비 한 번이면 다 떨어질 수 있으니까, 짧은 봄방학이 주어졌을 때는 누리는 게 맞다.


남편은 3월 중순에 고생하던 상장사 감사를 마치고 슬슬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친구들과 주말에 캠핑 약속이 있었다. 몇 달 전에 일정이 잡힐 땐 마음에 여유가 넘쳐서 쿨하게 말했다. "나는 어차피 주말에 출근하니까, 넌 맘 편히 잘 놀고 와." 그런데 막상 그 주말이 되니까 어찌나 셈이 나던지. 나도 나들이 가고 싶다. 나도 텐트 잘 친단 말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캠핑 사진을 보느라 나는 심술이 잔뜩 올랐고 남편은 누구보다도 4월 첫 주 휴가 기간을 기다렸을 것 같다.




3개월 동안 무슨 큰일이 있었겠냐만은


우리 부부가 봄방학을 즐기고 있을 무렵에 고객사는 1분기 회계결산을 한다. 그 말은, 2024년에 멈춰 있던 시계를 2025년 3월로 다시 맞추고 이제 2025년 1분기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12월과 3월 사이에 큰일이 그렇게 많았을까? 기말 감사를 한 판 치르고 나면 숨 좀 돌릴 법도 한데, 큰 회사들은 어김없이 1분기 검토 보고서를 내야 한다. 맞긴 하다. 해가 바뀌었고, 3개월 실적은 2024년과 별개니까. 주주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도 있지. 그래도... 1분기 검토 정도는 생략하면 안 됩니까?




다이어트의 계절


4월은, 감히 말하건대, 많은 감사인들이 1년 중 가장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시기이다. 일이 한 고비 넘어가고 정신을 차리면 셔츠 단추 사이가 벌어지고 바지 허리가 부담스럽다. 패딩 조끼를 봄까지 입고 다니는 건 꽃샘추위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불어난 뱃살을 가리기 위함이다.


남편도 비슷하다. 12월까지 잘 입은 셔츠가 쫄쫄이가 됐다. 3월에는 "4월 1일부터", 4월엔 "휴가 끝난 월요일부터"라고 말하며 미뤄오더니 드디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찌는 살을 빼려면 덜 먹고 운동까지 해야 하니 수지가 안 맞지만, 이젠 샐러드만 먹는다고 살이 빠지는 나이가 아니니까 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그렇게 밖에 나가 뛰기 시작하면 이제야 우리 집에 진짜 새해가 시작된 것 같다.





브런치에 올릴까 말까 고민만 하다 결국 올리지 않았던 시기에도, 회계사 생활에 대해 써둔 글들의 조회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아마 회계 업계가 궁금한 관련 직종 종사자들이 검색을 하다 들어온 것이겠지, 하고 짐작해 본다. 그런 분들이라면 회계사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조금은 궁금할 수도 있으니, 매달 하나씩이라도 올려보자고 스스로와 약속했었다. 그런데 역시, 나와의 약속이 어기기 제일 편리했던 탓에 3개월 치 글은 못 올렸다. 그런데 어찌 보면 12월 다음에 뜬금없이 4월 글을 올리게 된 게 우리 부부의 삶과 더 잘 어울리는 흐름일 수도? 우리는 이제 막 새해를 시작하고 있으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회계사 부부의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