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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가 많은 30대

by 김호누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올라가기 전 1층에서 늘 고민한다. 엘리베이터를 탈까, 계단으로 갈까. 방금까지 헬스장에서는 몇 십 킬로를 들고 스쿼트를 했으면서 집에서는 고작 3층 올라가는 걸 망설인다. 그리고 항상 '관리비 내는 만큼 엘리베이터 써야 한다'라는 무적의 논리로 엘리베이터를 탄다.


삼십몇 년을 나로 살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물론 어떤 핑계에 약한 지도 잘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은 땀을 안 흘렸으니 샤워를 안 해도 되고, 텀블러는 맹물만 담았으니 일주일 넘게 설거지를 안 해도 되고 마라샹궈는 재료가 골고루 들어간 따뜻한 샐러드라서 자주 먹어도 괜찮다.


문제는, 나는 단골 위스키바가 있는 멋진 어른이고 싶지 핑계만 많은 어른 싫다는 것이다. 되고 싶은 게 많은데 몸은 게으르고 정신은 나약하니 인생에 신포도만 많아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브런치 인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구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는 브런치 알람을 매번 무시한다.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냥 하면 된다. 친구는 '열심 세포'는 지금 크기만 작아진 것뿐이지 세포 수가 줄어든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열심히 못 사는 몸이 된 게 아니라 언제든 다시 열심히 살 수 있는 몸이라고 했다. 마음만 먹고 의지를 가진다면.


좋은 조언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또 노력하지 않을 핑계부터 찾았다. 취업하고 출근하는 데에 내 힘을 다 써버려서 이제 와서 열심 세포를 다시 가동하는 건 너무 힘들다고. 어차피 브런치 인기 작가는 내가 노력한다고 될 수 있게 아니라고. 내가 일기장에 찌끄렸던 걸 멋진 글로 발행한 작가님들이 넘쳐난다. 처음부터 내가 낄 곳이 아니었다고 신포도 취급해 버렸다.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워서 노력하게 만드는 것보다, 노력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탓하는 게 더 편리하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진작하지 않은 과거의 날 탓했지 지금 당장 행동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면서 오래 살면 더 좋고. 윤여정 배우님이 그랬다. "오래 살면 이기게 된다."


아직 조금 덜 멋진 어른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핑계는 못 찾았다. 그래서 일단 브런치 초안을 매일 쓰겠다는 작심삼일 중 일일 차 다짐을 했다. 마침 브런치북 공모전이 열린다는 공지글이 떴다. 공모전 공고글이 떠서야 행동하는 모양새가 된 게 머쓱하지만, 작아진 열심 세포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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