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카페에 노트북을 오픈하며 메모를 하던 도중이었다. 50대 혹은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자리를 잡더니 순식간에 카페의 분위기는 요란해지고 있었다. 그 일행들의 목소리가 조금 큰 것도 있긴 했지만 결코 평화롭지 않은 분위기 자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요란함을 풍겼다. 그리고 기어코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 속에는 친구끼리 싸워서 틀어진 관계를 다시 다독이려는 대화자리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재의 자리임에도 벌컥벌컥 순간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조용하게 말해. 왜 여기까지 와서 또 화를 내는 거야?"
"화는 무슨 화!"
그는 화를 내고 있지 않다고는 말하지만, 어째 그런 모습은 자존심 때문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가 있었다.
"평생을, 60을 가까이 이렇게 살아왔다. 어떻게 바뀌라고 하는 거냐. 그게 쉬운 줄 아냐. 알면서도 바꾸기 힘든 게 살아오면서 남긴 습관들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것도 아니며, 한번 몸에 녹아든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기에 결코 인식을 하며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기본 연습을 하는 것 보다도 제일 우선시하는 게 나쁜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습관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습관은 나이를 먹을수록 질 나쁜 고집으로도 변질되기 쉽다.
인간관계란 평생을 습관처럼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잘 알고 서로 잘 알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지켜줘야 할 것들이 많다.
나를 잘 알고 서로 잘 알기에 함부로 하다간, 수십 년 된 인연도 잃게 될 수가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고 똑같을 순 없다. 강한 사람도 약해질 수도 있고 화가 많던 사람도 순해질 수도 있고, 꾸준히 받아주었던 친구의 짜증도 수십 년이 지나선 도저히 못 받아 주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올해 60이 되신 아버지가 50년 지기인 친구와 인연을 끊게 되면서 느꼈던 건,
'그렇게 친하고 오래된 친구인데 뭐가 불만이어서 뭐가 아쉬워서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는 걸까.'라는 생각보단,
'얼마나 친구로서 같이 있는 게 힘들고 괴로워서 그런 결정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었다.
아버지 또한 그런 생각에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그 친구분은 끝까지 아버지의 연락시도를 무시했다.
아마 아버지의 여태까지 이어왔던 태도가 더 이상 그 친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태도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정말 어떻게 했던 것인지, 어떤 태도를 했는지, 내가 어떻게 타인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실례된 행동을 했을지, 자신의 행동을 되돌려 살펴보는 것이다.
그건 사람을 겪고 인연을 겪으면서 충분히 배울 수 있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 자체가 자신이 어떤 사람일지 알고,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