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에세이 '남자 여자'의 오마주 글
양식당에 전화벨이 울리는 경우의 대부분은 예약에 대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예약손님은 여성분들이었고, 남성 손님이 예약하더라도 어지간하면 대부분 데이트나 소개팅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였다.
워낙에 여성분들이 좋아해주는 양식이다보니 손님들의 대부분은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았고 남자끼리 파스타를 먹으러 오는 경우는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럴까요?”
“남자의 경우엔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파는 곳에는 여자와 가고 싶어 하지, 남자랑 가고 싶어 하진 않지.”
대부분의 테이블은 남녀 혹은 여성끼리. 그렇기에 정말 아주 드물게 남성 두명이서 자리하게 되면 괜한 시선이 가게 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런 남성 두 분의 손님이 한 팀으로 왔을 때였다.
한 사람은 살짝 왜소한 편이에 피부가 새하얗고 한 사람은 조금 근육질의 체형이었는데, 여자 직원들이 망상하기 딱 좋은 손님 두 사람인 모양이었다.
“분위기 묘하지 않아요?”
“왠지 그쪽일 것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
“보통은 남남커플로 파스타 집에 잘 안 오지 않나?”
참으로 가십거리로 하기 좋은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하는 수다라고 자기들만 들릴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타인에게 들리는 이상 그 손님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도 없다.
뭐가 됐든 편견은 좋지 않다. 그런 걸로 타인에 향한 실수로 본인이 민망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크게 와닿지 않는다.
양식당은 그런 면에서는 여러 편견을 만들기 좋은 곳이었다.
예를 들자면 가성비가 좋지 않지만, 비싼 대신 분위기 내기 좋은 곳. 그렇기에 데이트하기 좋은 곳.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는 곳.
그리고,
“잡담 말고 일해라. 일.”
혹여나 손님에게 들릴까 봐 염려한 사장은 직원들을 나무랬고, 혹여나 누구 한명이라도 잡담하지는 않은지 한 동안을 감시했다.
그리고 몇 주가 더 지난 연말의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는 예약을 받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혹여나 크리스마스에 예약이 가능한지에 대한 전화는 하루에 열통 이상은 걸려오고 있었고, 그만큼 많은 손님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가뜩이나 바쁠 날이기에 일일이 모든 예약시간에 맞춰 줄 수 없었던 만큼 모든 예약을 받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거기에 바쁜 연말시기에 뻔한 전화. 직원들은 점점 짜증이 날 법도 했고, 어떤 날에는 전화선 자체를 뽑아 두기도 했다.
[삐리리리리리리리리릴~]
그리고 이번에도 당연하게도 예약이 안 된다는 말을 전해줘야 할 것 같은 전화벨 소리.
이번에는 내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예약을 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죄송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이브의 예약은 전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 그게 아니라.]
내가 조금 성급했다는 걸 느꼈다. 거기에 조금은 나이가 든 것 같은 느낌의 남성 목소리엔 꽤나 조심스러운 듯한 느낌이었다.
“네? 아. 그러면 혹시 어느 날짜에 예약을 희망하시죠?” 나는 사과를 전하는 말 보다 그 말이 앞섰다.
손님은 희망하는 날짜를 말했고, 다행히 크리스마스엔 근접도 하지 않는 날짜에 예약을 희망했다. 하지만 날짜도 주중이었고 바쁘지 않았던 시간대였는데, 전화를 주신 손님에게는 예약 날짜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저기요...]
“네?”
[저희 일행이 50대들인데, ‘저희 같은 사람들’이 ‘그런 곳’에 가서 식사해도 괜찮은 건가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멍했다. 그건 아주 잠시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겠지만,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네?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네. 그럼 예약 날짜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분명 전화를 주신 손님은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던 이곳에 와보고는 싶었지만, 그저 자신이 비교적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방문에 장벽을 느끼는 건 아니었던지,
어째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이 손님들은 그런 생각으로 괜한 근심을 먼저하게 되었던 걸까.
반면에 왜 난 비교적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을까.
양식이든 뭐든 맛있다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것인데.
처음에는 단순히 여자와 남자의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명란 파스타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쉽사리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양식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말 그대로 우리 엄마 아빠도 파스타를 좋아하고 젊은 친구들이 자주 가는 곳에 가보고 싶지만, 젊은이들 사이에 끼는 것이 괜스레 눈치 보여서 시도조차 못해 볼 수도 있겠지.
그제서야 부모님을 팔을 이끌고 힙한 카페나 레스토랑에 데려오는 여성 손님들을 보면 나 같은 아들들도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좋은 건 그 누구라도 즐겨보고 싶다.
외견상의 문제로 쉽사리 이렇게 저렇게 편견을 갖지 말 것이다. 나 또한 여자친구가 아닌 부모님을 모시고 분위기 좋은 파스타와 스테이크 집에 데려갔던 적이 있던가.
<이 글은 1월 신 발간 박완서작가님의 에세이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의 수록작 남자여자의 오마주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