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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 김훈 지음

영웅의 그늘을 걷어낸 인간 안중근의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




세 갈래의 철길로 열차가 달렸다. 이토는 대련에서 봉천과 장춘을 거쳐 하얼빈으로 향하고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나아갔다. 그의 아내 김아려는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역에서 압록강을 건너 하얼빈으로 넘어갔다.


이토의 철길은 약육강식의 길이며 안중근의 철길은 동양평화의 길이었다. 하지만 김아려는 안중근의 길을 알 수 없었다.


이토는 문명의 길에서는 앞선 자가 선의로써 뒤처진 자를 개발 유도할 책무가 있다며 이 책무를 수행함으로써 동양의 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안중근은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 동양평화라고 했다.


1909년 10월 26일 마침내 하얼빈 역에서 이토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대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6발의 총성이 울렸다. 응징의 탄알 세 발이 이토의 심장을 깨부숴 버렸다. 안중근은 생포 직전 코레아 후라라고 외쳤다. 


안중근의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이토를  죽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죽인 이유를 법정에서 밝히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바로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던 것이다.


일본 검찰 앞에서 안중근의 자세는 매우 견고한 태산같았고 법정 진술은 짧고 단호했다.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와 동양평화론을 적극 펼쳤다. 그리고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준 무명 옷을 입고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소에서 죽었다.


김훈의 ‘하얼빈’은 이토 저격 후 31살 청년 안중근이 겪어야만 했던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가족과 천주교의 관계 속에서 안중근은 깊이 고민하고 크게 흔들렸다.


김훈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고 한다. 그는 이토 저격 장면은  매우 짧고 강하게 그린 반면 일본 검찰과의 신문과 재판과정은 밀도있게 상세히 다루고 있다.  


김훈은 이 소설을 50년 전부터 구상했고 난중일기가 칼의 노래로 이어졌고 안중근의 재판과정에서 남긴 신문초고가 소설 하얼빈의 모티프가 되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안중근이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이 컸을 것이다. 애초 이 소설의 제목도 하얼빈에서 만나자였지만 조사와 서술어를 삭제하고 고유명사만 남겨 이 공간이 주는 역사적 중량감을 높였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  등에 검은 점 7개가 있어서 안응칠이라 불렀고 아버지는 바깥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주기 위해 무거울 중과 뿌리 근을 썼다고 한다. 안 씨 문성공의 후손인 그는 16살 나이에 동학당에 맞서 총포를 쏜 포수였다. 상해와 연해주 일대를 주유하며 조선해방의 길을 찾고자 했다.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의병대를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토를 죽이고자 단지동맹의 동지 오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했다.


작가 김훈은 여순에서 하얼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에 이르는 철길을 따라가며 이토의 제국적 행적을 좇고 안중근의 애국해방의 길을 따라간다. 그래서 애초 이 소설의 원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이다고 주장하는 이토의 제국주의적 철학과 위스키와 도미회를 좋아했던 개인적 취향까지 면밀히 조사하여 문학적으로 세밀하게 형상화 시킨 김훈의 문장은 변함없이 아름답게 빛난다. 그동안 역사적 인물에 대한 독보적인 작품을 써온 대작가답게 이 소설 하얼빈도 김훈 소설의 정수가 될 것이다.


오는 10월 26일이면 안중근 의사 의거 113년이 된다. 올해는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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