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고선영 Dec 21. 2022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 책에 이 글을 실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용기

한 달이 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명절 마지막 날부터 완전히 무너졌었죠.


다시 상실했던 전의를 정비해야 하는데 아직은 어렵습니다.


어제 책방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쏟아지는 단백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국 집에서 치킨을 시키고 먹었습니다.


엄마도 한 조각을 입에 대고 바로 양치질을 하시더군요.


다 씻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장을 열었어요.


장 속에서 꺼낸 엄마의 화장품은 '소주 병'이었어요.


소주병 안에는 뭐가 가득 들어 있었고요.


그 병 안에 글리세린과 뭐였죠?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액체를 콸콸 붓는 엄마를 보자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습니다.



"꼭 그렇게 궁상을 떨어야겠어?"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었죠.


물론 제가 이 말만 한 건 아닙니다.


그전에 엄마가 늘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콕 집어내서 쏘아붙였습니다.



"너네 아빠는 잠 하나는 진짜 잘 자. 그래서 저렇게 건강하지."



그 말에도 화가 났습니다.


엄마는 눈도 아프고 이곳저곳 아픈데 자기한테는 부정적인 말만 하는 것 같아서요.


아프니까 아프다 한 건데 말입니다.


사실 아빠도 안 아픈 건 아닙니다.


엄마가 볼 때 상대적으로 안 아픈 걸로 보이는 걸까 생각했지요.


아무튼 이 일이 먼저였고 그 이후 치킨을 먹었고 그다음 화장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엄마가 화를 내더라고요.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서 쓰는 사람한테 이야기 듣고 한 건데 뭘 그러냐고...


엄마 화장품 한 번을 안 사준 딸년이 뭔 소리가 그렇게 많았을까요?


게다가 그 순간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개화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 눈에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말 미개하게


산다고 느꼈겠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미개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요?


똥 누는 거 하나만 봐도 그렇게 앉아서 배변을 하는 것이 더 과학적이라죠?


똥거름으로 쓰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선진화된 문화들이 과연 선진화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주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면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거 같아요.



그래서 잠을 자려는데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엄마한테 미안했습니다. 궁상이라고 내가 그냥 몰아붙이는 것이 맞았을까... 하면서요.


새벽에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가자마자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미안해. 어제 내가 그렇게 말한 건 잘 못 된 거 같아."



엄마는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궁상떠는 엄마가 싫었을까?


아니면 엄마한테 화장품 한 번 안 사준 내가 싫었을까?




그래도 엄마가 나한테 화를 내니까 좋았어요.


우리 엄마는 늘 '미안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거든요.




용기 내길 잘한 거 같아요.


살면서 용기 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쉽지 않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나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봅니다.


고선영 수고했어 오늘도!






#미안해 #엄마 #용기 #궁상 #작가고선영

작가의 이전글 따뜻한 생강차를 마시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