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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Aug 30. 2023

어른들도 놀아야지

진짜놀이, 가짜놀이


몇 년 전 회사 워크숍에서 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놀았다.


처음에는 '007빵'을 했는데 대표님이 말하고 싶어 할 때마다 엄지를 거꾸로 들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 게임을 하다가 누가 먼저 권했는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잡기 놀이'를 했다.

술래가 된 남자 직원, 여자 직원, 대표, 상무, 이사 직급 상관없이 신나게 놀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술래들은 육감을 발휘해 술래가 아닌 사람들을 잡았는데...

그때의 그 스릴을 뭐라 할까.

좀비에게 잡히면 인생이 끝장이라도 나듯 우리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놀았다.

특히, 이불을 뒤집어쓴 허연 머리 대표님의 '휙~' 소리가 나는 팔 휘두름은 심장이 쫄깃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결국 그날 누구는 강원도에 위치한 콘도 싱크대에 올라갔다 떨어졌고, 누구는 발이 찢겨 피를 보기도 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놀았으니 그 누구도 시켜한 짓은 아니다.

그 이후 이직했을 때 워크숍을 가서 고기를 기다리던 일이 있었다. 앉아있던 젊은 직원 하나가 자신의 양말을 돌돌 말아 던지면서 놀이는 시작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놀이에 참여했고, 양말을 놓칠 때마다 '와아~~~~~'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고기를 사러 간 직원을 쏙 빼고 놀다가 저녁을 거하게 다 먹고는 또 '과자 따먹기'를 했다.​

적어도 우리의 평균 연령이 마흔은 족히 넘었으리라.​


재작년인지, 작년인지도 약간 가물거리지만 악어 책방을 열고 마음 북클럽 멤버들과 놀았다.


서울 식물원에 가을 소풍을 가서 우리는 '신발 던지기'를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다들 애가 초등생 또는 영유아. 그런 애들 엄마가 얼마나 빠르던지 나는 그날 놀랐다.​

우리는 신나게 놀고, 돗자리에 앉아서 각자 싸온 간식을 먹었다.


너무너무(이 말로는 부족하지) 재밌었다.​



『 오늘날 아이들의 놀이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통제의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다.... (중략)

놀이는 이제 보호자의 시야 안에서만 허락되며, 모든 위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어야만 놀이의 터로서

인정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도 당연히 제거의 대상이다. 』

지금까지 살면서 손꼽을 수 있는 제일 재밌는 놀이는 대개 다 자연에서다.


내가 강의 때마다 재탕, 삼탕 우려먹는 어린 시절의 놀이가 있다.​

국민학교 2~3학년 때였지 싶다.

겨울이었고 모처럼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오니 뭘 할까를 궁리하다가 우유배달하던 우리 엄마의 우유 박스가 생각났다.

거기에 눈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발로 눌러서 커다란 벽돌을 찍어냈다.

그 벽돌을 조심히 세우다가 몇 번은 깨졌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벽돌을 꽤 많이 찍어낸 후에 벽돌과 벽돌을 이어붙이고, 사이를 눈으로 발랐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기억한다. 이글루를 만든 우리는 정말 기뻤고, 그 안에 들어가서 성취의 즐거움을 오래 누렸다. 어른들이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방법을 알려준 것도 아니다.


내 인생 가장 손꼽는 멋진 놀이였다.

​​


통제되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환경 안에서의 놀이는 이미 자발적이지 않다.

목적이 없을 때 우리는 자유롭고, 신나게 놀 수 있다.

살아있다는 건 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어른이든, 아이든 가짜 놀이가 아닌 진짜 놀이를 해야 한다.

가짜 놀이는 통제성을 띤다.

안전하다는 포장을 입는다.

그래서 키즈카페를 싫어한다.

키즈카페에서의 놀이는 가짜다.

어른들이 짜놓은 판이니까.​

아이들은 스스로 놀아야 한다.

스스로 뭘 하고 놀지를 정하고, 충분히 놀아야 한다.

스스로, 충분히 놀아야 내 영혼이 나의 것이 되어

삶이 건강해진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_2023. 8. 28. 악어책방 월요일 독서모임, 월글에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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