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두려움이 많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기억의 태엽을 거꾸로 돌리면 돌릴수록 빛나는 눈으로 찬란한 꿈들을 꾸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그때의 빛나던 눈에는 그 꿈들이 그리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 눈에는 그때가 너무 눈부셔서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내뱉는 언어가 쉬이 꿈이 되었던 그때와 달리 이젠 며칠, 몇 달의 고민 끝에 겨우 내뱉은 단어도 꿈이 되기 어렵다. 이제 나도 꿈을 쉽게 꿀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수많은 단어들이 뇌리를 스치고 그중 어렵사리 몇 개의 단어들을 오밀조밀 모아 문장을 만들어보지만, 그게 예전처럼 그리 빛나지는 않는다. 그걸 깨달을 때면 괜스레 그때로 태엽을 돌려보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찬란한 과거인 걸까. 꿈을 꾸지 못한다는 건 분명 죽음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꿈을 상실한 인간은 어쩌면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유기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꿈이라는 게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니다. 거창하지 않은 꿈이라도 현실의 저울을 들이대면 날카로운 온갖 잣대들로 재단된다.
행복해지려면 꿈이 커야 할까. 눈부시게 빛나는 꿈을 품는다면 그때의 나처럼 지금의 나도 찬란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는 달에 장미를 심을 테다. 회색빛 대지에 붉은 장미를 심어서 여기 지상에서 올려다봐도 붉은빛이 느껴질 만큼 심을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