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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드 Aug 11. 2020

좀 닥달을 할걸 그랬어

엄마 그랬어도 결과는 같을거예요

"그때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닥달을 할걸 그랬어"


라고, 평생 내게 무엇을 해라, 하지마라 않던 엄마가 서른여덟 아들에게 툭 던지듯 말을 하셨다. 우리 부모님의 교육방식은 넓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알아도 모른척'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놀고 공부하며 크게 상처받는 일 없이 자랐다. 아이를 낳은 이후 부모로서 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자녀교육에 있어서 우리 부모님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엄마가 '닥달'을 좀 할걸 그랬다고 푸념을 하셨다.


 얘기의 시작은 나의 '인복'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살면서 크게 이상하거나 나쁜 사람들을 만난적이 없고, 만나는 사람들과 대체로 잘 지내고 적당히 예쁨받고 살았던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늘 내게 '인복이 있어서  예쁨을 받는다'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사실 절반만 맞는다. 나도 사람에 치이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산다. 평범한 회사원의 삶이란 그런것이다. 아무튼, 엄마는 나의 인복을 얘기하시며 당신의 아들이 복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시는것 같았다.


 그 말에 나는 "그런것 치고는 막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것 같네"라고 껄껄 웃으며 손에 든 사과를 입에 넣었다. 엄마가 따라 웃을줄 알았는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나보더라. 한 일분정도 못내못내 우물쭈물하시다가 "그때 좀 더 닥달을 할걸 그랬어"라고 하셨다. 엄마로서는 내게 그런말을 하는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 평생 서른여덟해 동안 아들을 키우며 저런 말 하신적이 없었으니까. 그 말을 뱉으신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는데,  '푸슈슈~'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것만 같았다. 그동안 얼마나 저 말이 하고싶으셨을까.


 나는 고시공부를 참 길게도 했다. 스무살에 서울로 혼자 올라와서 6년반을 학교생활과 병행하며 공부를 했는데 내리 실패를 했다. 수험생활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미 나는 '내 길이 아니였다'고 정리한지 오래다. 그 기간 내내 치열하게 공부했다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을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시시콜콜 얘기할건 아니라서 부모님 앞에서는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공부한지 3년쯤 지났을때였을까. 전화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딱 한마디를 하셨다. "허송세월은 하지마.."라고. 크게 호통치거나 타이르는 말투도 아니고, 혼잣말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허송세월은 하지마.."라고 하셨다. 그 말은 바로 어제 들은 말처럼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내가 그때 바로 그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휴학하고 고시촌에 있으면서 학원도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책을 본답시고 시간만 물처럼 흘려보냈던 시절,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시절. 다시 돌아간다고해도 우왕좌왕 헤멜것 같은 시절.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음에도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지는 못했고, 그래도 더 늦기전에 진로를 바꿔 평범한 회사원이라도 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있고, 많은 부분이 안정되어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네"라는 말을 껄껄 웃으며 할 수 있는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평생 법관이 될 '뻔'했던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신가 보다. 그런 옷 내게는 맞지않아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를 닥달하게 될 것만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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