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 한명은 원래 좀 별난구석이 있었지만,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 앞가림을 못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군대에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 직장을 두어군데 다니기는 했지만 이렇다할 밥벌이를 못한다. 아니 안하는것 같다. 가끔 만나 술을 사주면서 '힘내라 잘될거다' 같은 얘기를 했다. 친구들끼리 심한 농담을 주고 받아도 그에게는 쉽게 그러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계속 길어져 나는 작심하고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충고하고 싶어 죽겠어도 참아야 하는거다"라는 명언을 어디서 보긴했는데, '내가 얘랑 친구안하면 안했지 이대로는 못보고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덕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며 얘기했다.
친구는 취직이나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사회 이슈나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은 정말 깊이 알고 있고 매번 그런 얘기들을 했다. 하지만 이해가 깊어질수록 정치관이나 젠더이슈에 대해 조금 편향된 시각을 갖고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취업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이유도 제법 많이 있었다. 내가 그가 아니기에 그 모든걸 이해한다거나 평가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친구로서 바로잡아줄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주로 집에있을거고 인터넷하지, 뉴스 계속 볼거고, 댓글 읽고 달거고"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이슈에 대해 많이 아는것 같고, 정말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것 같고 그렇지" 사실 이 내용은 내가 공부를 한답시고 허송세월을 할때 나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친구를 향한 이야기는 동시에 과거의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근데 다들 알아. 알고도 더 급하고 절박한 일들이 많아서 그냥 어쩌지 못하는걸꺼야. 얘나 나나 그냥 회사다니면서 거지같은거 겪으면서도 그냥 묵묵히 참고 다녀. 너 지난번에 다닌 회사도 윗사람이 맘에 안든다고 그만둿잖아. 우리 윗사람들도 다 그래. 그런사람 안겪어봐서 모른다고 얘기하면 안돼. 그냥 참고다니는거야. 월급나오는거 다 그런거 참고 나오는거야"라고 말했다. 지나고보면 정말 꼰대의 발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부모님이나 선배들이 할법한 얘기들을 많이도 했다.
놀라운건 그 말을 듣고 발끈해서 반박할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듣고있을 뿐이었다. 친구가 반박하고 나서서 나랑 안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꺼낸 말이었다. 친구가 너무 쉽게 수긍하니 충고는 그쯤하고 친구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친구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산책한다 생각하고 동네 고용센터에 가. 1층에 들어가면 은행처럼 창구가 많이 있을거거든. 그 중에 아무데나 앉아. 그리고 앞에있는 사람한테 좀 도와달라그래. 일단 나는 네가 그것만 해주면 너무 고마울것 같아"
내 말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친구는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말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다른 친구같았으면 화를 불같이 내고 싸웠을텐데 학창시절부터 자신을 좋게만 대해주던 내가 쓴소리를 하니 정신이 든다고 했다. 고용센터를 가는 내용에 대해서는 나랑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에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약속을 받는데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너 5년 뒤에도 나랑 여기 앉아서 똑같은 얘기할래? 너 내일 일어나서 고용센터가면 나랑 5년 뒤에 여기 앉아서 오늘 나눈 얘기가 추억이 되는거야. 안가면 그때도 똑같은 얘기하고 있을거야"
그 말에 친구는 고용센터에 간다고, 열심히 구직을 해보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 후로 두군데 정도의 회사를 더 드나들었고 여전히 구직중이다. 다만 천천히 글도 쓰는것 같고 영상도 찍어보는것 같다. 내가 바라는건 그걸 통해서 정말 밥벌이를 하는것이 아니다. 근 10년이 넘게 혼자 방구석에서 모니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것에 익숙한 그가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밖을 돌아다니면서 진짜 세상을 보고 스스로와 대화를 해보기를 원한다. 물론, 그의 유튜브가 잘되면 나도 거기 좀 끼어볼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