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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드 May 02. 2020

운전석 '오늘도 무사히'의 의미

나보다 느리면 멍청이 빠르면 미친X

 수능시험을 치르자마자 친구들과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었다.


 그렇게 운전면허를 딴 나와 친구들은 곧바로 아빠차로 시골길을 누비곤 했는데, 차가 막히는 일이 없고 도로는 만화 '이니셜D'에 나오는 드리프트 장소와 닮아있었다. 면허를 취득한지 한달이 채 되지않은 열아홉살, 클러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시동이 꺼지는 수동기어 차였지만 다들 재주가 좋았던지 잘 돌아다녔다.


 때문인지 나는 운전이 좀 험하다. '나보다 느리면 멍청이고, 나보다 빨리가면 미친X'이라는 우스운 얘기는 내게 딱 맞는 문구다. 사실 아내와 연애를 하기 전까지 내 운전습관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은연중에 '나는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아내는 내가 모는 차를 탔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화를 내는 법이 없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했고, 나도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그랬단 말이지.


 아내의 말을 듣고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거슬리는 모든것에 반응했다. 1차선에서 느리게 가는 사람, 깜박이 없이 차선을 넘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화를 내거나 빔을 켜고 차를 옆에 대고 노려봤다. 정말 운전하지 않을때는 볼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아내에게 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연애하는 동안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운전 한 번에 모든게 헛수고가 된것 같았다.


 자각 이후 계속 노력했지만 단번에 습관이 고쳐지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차 안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아빠는 운전 경력만 40년이 넘으셨는데, 평소에 오히려 욱하는 성격이시지만 운전할 때는 화를 내는 법이 없으시다. 아빠는 그 비결을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식으로 말해주셨다. 운전경력이 길어지고 가족을 태운 경험이 많아질수록 좀 더 평정심을 갖는것 같았다. 나는 운전경력이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왜 이모양일까. 가족을 태운 경력이 길지 않아서일까. 나도 아기를 태울때는 정말 얌전히 운전하는 편인걸 보면 정말 가족의 동승여부가 큰 영향일까.


 개인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나라면 벌써 화를 냈을 상황에도 동요가 없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친구는 평소에도 서두르거나 당황하는 법이 없는 성격이라서 이게 운전까지 연결되는건 아닐까. 나는 대부분 서두르고 대충하려고 하는 성격이면서 욱하기까지 하니 운전에서도 당연히 그렇다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스스로 반성하고 다그쳐서 성격 자체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종국에는 상대 운전자가 잘못을 하더라도 '그럴수도 있지'라고 할 수 있도록. 옛날 아저씨들 차에 있던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는 상대 운전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이너피스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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