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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드 May 04. 2020

우리의 생일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서른 여덟번째 생일이었다.


 나의 생일은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이다. 생일 탓인지 나는 아주 평범한 근로자가 되었고, 매년 생일에 출근안하고 쉴 수 있어서 기뻐한다. 소박한 근로자. (예전엔 '법의 날'도 같은날이라 어릴땐 법조인이 될 줄 알았는데, 4월 25일로 변경되었다. 애초에 근로자가 될 팔자였던걸 괜한 오해를 했던듯)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지만, 세상이 변해 핸드폰에 차곡차곡 쌓이는 기프티콘은 참 좋다. 아내가 케익을 사러간다기에 그저 이 기프티콘 중에 하나 쓰라고 주었더니, 귀여운 노란 기린 인형이 두마리 앉아있는 초코케익을 사왔다. 이것이 정녕 나의 생일 케익인가. 아들이 케익에 초를 켜고 노래하고 후~ 불어 끄는걸 정말 좋아하는데, 내 서른여덟번째 생일 케익도 그의 몫이되었다. 귀여운 노란 기린이 올려진 초코케익에 노래를 부를때도 "사랑하는 OO의 ~ " 부분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통에 촛불만 숫자 '38'로 새겨졌을뿐 온전히 아들의 케익. 더 억울한건 며칠 더 있으면 아들 본인의 생일이라는 것.


 공교롭게 나와 아내의 생일은 모두 5월이다. 결혼하면서 기왕 이렇게된거 아이 생일도 5월로 하겠다 호언장담을 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이의 생일도 5월이 되었다. 덕분에 행사가 많은 가정의 달은 완전 헬파티. 이틀에 한번씩 무슨 날, 무슨 날. 그래도 기념일이 많아서 좋다.


 단순히 같은달에 생일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나의 생일에 대한 좋은 기억을 전해줄 수 있을것 같아서 더 좋다. 내게 있어 생일은 늘 기분좋은 봄날의 충만함이었고, 아내도 비슷한 기억일 것이고.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참 닮은 구석이 많다. 이런 느낌을 아이에게도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실현되어 좋다. 부모님이 주신 선물을 아이에게도 물려줄 수 있게되어서.


 피천득님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고 했다. 평소 '청춘'이라는 단어에 죽고 못사는 나는, 저 구절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청춘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바로 오월의 봄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삶이 늘 오월의 봄처럼 푸르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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