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2023)>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한다. 그가 우리네 삶에서 숨 쉬듯 일어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넘기곤 하는, 하지만 깊게 들어가 보면 큰 울림을 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조명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본 지는 꽤 됐지만 <어느 가족(2018)>의 따뜻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깊음, <환상의 빛(1995)>의 먹먹함을 아직 기억하는 이유 역시 아마 그 이야기들이 나 자신과 너무 멀지 않은,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 자리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 재개봉 한 <괴물>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그만의 방식으로 버무려져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데, 특징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세 작품들에 비하면 형태와 성격 면에서 약간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미나토'(쿠로카와 소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사건을 둘러싸고 미나토와 그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 담임 선생님인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 등으로 시점이 변하는 옴니버스 형태인 데다, 장르도 일상물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그리고 성장 드라마까지 몇 차례 그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대충 이러하다. 5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잘 기르던 머리를 자른다거나 물통에 흙과 돌멩이를 넣어오고, 밤마다 외딴 터널로 가는 등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미나토와 그런 아들이 의심스러운 사오리. 왕따를 의심하고 찾아간 학교에서는 호리 선생이 미나토를 학대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리고, 결국 사오리는 그를 학교에서 내쫓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로부터 미나토가 같은 학급 친구인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는 돼지 뇌를 낀 인간이야'라는 둥 심상치 않은 미나토의 대사에 영화 초반부 관객들은 '미나토가 정말 괴물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사오리에서 호리 선생, 그리고 미나토로 시점이 차례로 바뀌며 점차 우리는 이번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사실 따돌림 당하던 것은 미나토가 아니라 요리였으며, 그와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미나토가 요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며 이를 감추고자 호리 선생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의 초중반부,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한 번씩 '괴물'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말이다. 미혼모 가정에서 자라 애들을 따돌리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라 여겨지는 미나토,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극성 엄마가 돼 버린 사오리, 또래 남자아이들 대비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학대와 왕따를 당해온 요리, 학생을 때렸다는 누명이 씌워졌음에도 학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버린 호리 선생, 그리고 그와 사오리에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감정 없는 대응으로 일관하는 교직원들까지. 주인공들은 물론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말이다.
이에 따라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었던 적은 없는지,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이었던 적은 없었는지.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라는 말처럼, 그들을 괴물 취급했던 순간 나 또한 그렇게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결국 우리 모두가 괴물이자 괴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화 전반의 평온하고 따뜻한 색채 속에서도 서슬 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메시지 덕에 <괴물>의 초중반부는 보는 이들에게 꽤나 큰 묵직함을 안긴다. 피부에 직접 와닿는 듯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냉소적 입김과, 곳곳에 숨겨진 은유와 암시는 이 영화를 다른 드라마 장르 작품들 대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여겨지게끔 만든다. 적어도 초중반부는 그렇다.
애석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영화의 막판 두 소년의 성장 드라마에 모두 휩쓸려 내려가 버린다는 점이다. 중심이자 실체가 되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역으로 지금껏 애써 세워놓은 모래성을 전부 집어삼킨 셈이랄까. 나름 예쁘게 지어진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지 모를 허탈함을 안은 채 영화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한 가지가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는 아니었을까 싶다. 주제가 2가지인데, 그 둘의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았기에 영화를 더 복잡하고,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있어 <괴물>은 초중반부 '우리 모두가 괴물일 수도, 괴물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그리고 후반부에는 '우리가 괴물처럼 보는 그들 역시 행복을 찾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앞뒤로 이어지며 일맥상통한 듯도 보이지만, 사실 두 주제 사이에는 보편성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존재한다. 초중반부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는 자아성찰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후반부는 소수자인 '그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전자 대비 다소 보편성이 낮은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매우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다른 주제가 튀어나온 것도 복잡한데, 심지어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니, 관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뿐만 아니라 초반부터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크게 고양시킨 나머지 후반부가 다소 힘이 빠진 것도 치명적이었다 생각한다. 비중이 너무 앞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보통의 영화들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고 감정을 점차 끌어올리는 반면, <괴물>은 초반부터 꽤 높은 정도로 관객들을 뜨겁게 만드는 영화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 만큼 저마다 각각 감정이 고양되는 부분이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정도는 격렬하지 않을지언정, 억울하게 괴물로 변하게 된 사오리와 호리 선생의 이야기, 그리고 해당 인물들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 낸 안도 사쿠라와 나가야마 에이타의 연기력이 더해지며 관객들이 그들의 입장이 돼서 극에 온전히 몰입해 억울해하고, 분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에는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과열된 분위기와 고조된 감정을 이어나가기에 후반부 미나토의 이야기는 다소 가볍고, 또 기존의 주제와는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의 실체가 담긴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는 앞서 설명했듯 초중반부와 주제가 달라지며 한 가지 메시지를 이어가는 데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인 연결성을 상실한 것은 물론,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구간마저 거의 없다시피 한 만큼 결말이 너무 잔잔할 뿐 아니라 붕 뜬 것처럼 돼버린 탓이다. (다만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을 탓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물론 베테랑들이 크게 벌려놓은 극을 마무리하는 역할 자체가 그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스토리 구조 자체가 그들이 뭔가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 했다.)
뿐만 아니라 미나토와 요리 두 사람을 조명하기 시작하면서 사오리와 호리 선생의 스토리가 풀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는 점도 아쉽다. 영화의 초중반부 꽤나 무게를 줘서 풀어놨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를 함께 어우르는 시간을 전혀 할애하지 았았다는 점은 다소 의아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는 '닫힌 결말'을 원치 않았기에 불가피하게 해야만 했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나토와 요리 이외에 사회로부터 '괴물' 취급받아야 했던 이들을 보듬는 과정이 전무하고, 이들이 피해자가 된 채로 결말을 맞아야만 한다는 점은 다소 찜찜하고, 또 찝찝하게만 느껴진다. 이것이 그 누구도 아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선택이기 때문에 더욱 물음표가 붙는 부분.
이외에도 앞부분에 여러 가지 떡밥을 뿌려놨는데 그게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거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 경우도 제법 있다. 예를 들자면 영화 극초반부 발생했던 건물의 화재사건의 진범이 사실은 호리 선생이 아니라 요리였다는 사실이 그러한데, 이는 단순히 사오리에게 있어 미나토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여지를 제공했을 뿐, 그 이상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게 된다(후반부 미나토가 이를 알아채며 요리를 다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리에 대한 미나토의 감정이 흔들리게 되는 원인으로써 관객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쓰일 법한 장면이었음에도 그 쓰임새가 좋지 못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폭풍 같았던 일련의 사건, 그리고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 속에 '그들만의 세계'가 무너지며 현실로 나오게 되는 미나토와 요리. 이후 미나토는 한 차례의 태풍을 겪은 것에 대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별 것이 아니며, 변한 것이 없다'라고 소감을 말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미나토가 그저 '태풍'이라는 이름의 자연현상을 겪은 것이 아니라, 자칫 죽을 뻔한 위기 속에서도 요리에 대한 감정이 전혀 식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마음이 고작 이런 사건으로 사라질 가벼운 것이 아님을 깨닫고 이전과 다른 존재로 변해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지켜줄 아지트가 없기에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즐겁게 들판을 뛰어다닐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외부의 시선이나 굴레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살아가겠다는 선택을 내린 이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됐음에도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순수하면서도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두 사람이 괴물에서 인간이 되는 순간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들이 부모에게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그간 닫혀있던 어두운 철길로 향하는 결말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리라.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그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인도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쉽사리 답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열린 형태의 결말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기에는 진흙 투성이처럼 더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내면만은 미나토와 요리처럼 순수한 아이들 같을지도 모를 '그들'의 내면을 과연 우리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을 무조건 괴물로만 바라보는 것은 과연 옳은 판단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우리 역시 괴물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이 질문을 듣고 쉽게 입을 떼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영화 <괴물>이 제대로 잡히지 못한 중심 주제,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채 주워 담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결말 등으로 다소 아쉬운 결과물이 됐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그간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들이 어느 때보다 격하게 흔들리고 뒤틀리는 지금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순수함과 뒤틀림, 그 어딘가에 자리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결국 스크린 바깥 관객들의 몫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