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확실성이 팽창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콘텐츠 -
(이 글은 2020.07에 쓴 글입니다)
요즘 MBTI 콘텐츠가 인기다. MBTI는 칼 융의 성격 유형론을 토대로 이사벨 마이어스와 캐서린 브릭스가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격유형 테스트가 세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리고 유튜브를 들어갈 때 종종 MBTI 콘텐츠를 접하곤 한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건 너가 자주 그런 유형의 글들을 검색했기 때문일 수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너의 성향에 맞추어 추천해준 거야” 부정을 하지 않겠다. 개인적인 성향과 미래의 직업 때문에 나는 ‘MBTI’나 ‘에니어그램’ 같은 인간 심리를 다루는 콘텐츠를 즐겨본다.
하지만 이것을 나 한 사람만 체감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염탐(?)하는 나로써는, 심심치 않게 MBTI에 관한 글들을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난 3년 간에 비해 MBTI 검색량은 최근에 급증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일종의 유행과 같은 놀이로 여기며, 또 다른 누군가는 MBTI를 과몰입하는 사회현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양쪽 측면 모두 이해가 가고 이런 안건 자체가 재미있는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흐름에 편승해서 왜 MBTI 콘텐츠가 인기인지 나만의 주관적인 썰과 근거들을 풀어내려고 한다
불과(?) 10여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열풍이 있었다. 바로 혈액형 성격 테스트였다. 당시 B형인 나로써는 ‘어쩐지 B형이 줄 알았다!’라는 말을 몇번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별자리 성격 테스트도 어릴 적에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정확히 말하면, 일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스테디셀러였던 셈이다).
혈액형, 별자리 성격 유형테스트의 공통점은 ‘고정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한번 부여 받은 특성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 B형이 였던 남자는 내일도, 그리고 10년 후에도 B형일 것이다. 그리고 어제 전갈자리였던 남자 역시 전갈자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기존에 유행했던 혈액형과 별자리 테스트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성격이 고정되어있음을 근거로 둔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과연 일평생 같을 수 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의 성격과 대학교 때의 성격이 같았나? 또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변화되고 있지 않나? 때로 커다란 사건이 사람을 확 바꿔 놓았지 않았나? 이처럼 우리의 성격은 결코 고정되어 있다고만 볼 수 없다.
먼 미래, 먼 과거로 갈 필요 없이, 현재에도 우리의 성격은 조금씩 변덕을 부린다. 최악의 회사에 입사해서 고객에게는 폭언을, 구성원들에게 실적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면 제 아무리 밝은 성격의 소유자일지라도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시니컬해지기 쉽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면 그가 속한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판단기준을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오직 선천적인 요인만이 우리의 판단기준(=성격)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MBTI는 바로 이 점에서 혈액형과 별자리 테스트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우리가 MBTI의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일종의 테스트를 거치는데, 테스트 과정들을 떠올려 봐라.
이것들은 주어진 조건(정보)에 대해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지를 묻는 '판단 선호도' 테스트다. 실제로 MBTI의 방향성은 한 개인은 정보를 어떻게 인식하기를 선호하는 지,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지를 점검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 직관형 N vs 감각(현실)형 S,
인식형(상황에 맞춰 움직임) P vs 판단형(정리&계획) J를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판단 선호도’. 선호도, 취향, 좋아하는 것 등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바뀌어 나간다. 어릴 때 입맛과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입맛이 다르듯 말이다. 이처럼 MBTI는 ‘선호도’를 근거로 하는 유동적인 심리테스트다. 사람의 변화에 대해 기존에 유행처럼 번졌던 심리테스트보다 신빙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바로 여기 있다.
더 나아가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의 성향을 미리 오픈한다. 본인의 성향이 계속 내향적이라고 답을 준 상황에서, MBTI가 ‘당신은 친구에게 돌직구를 날리지 못하는 스타일이네요’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MBTI가 이전에 유행했던 혈액형 테스트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있다고 한다면, 왜 이런 테스트가 최근들어 유행하는 걸까? 단지 신빙성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이 TEST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서두에도 밝혔지만 이 이유를 단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성격유형테스트에 관심을 가져왔고 이것이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와 맞물려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것일 수 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대인 관계 교류가 줄어든 이때, 이것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아주 재미있는 놀이거리라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에 나는 한가지 견해를 더 덧붙이려고 한다.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요소들이 MBTI 인기에 한 몫을 했다는 의견을 말이다. 그리고 이건 실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9년 상반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가라는 꿈을 위해 오랜 시간 달려왔지만,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쳐 포기하는 순간 직면했다. 그때 나는 이제 작가 외에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했다. 전업 작가로 살아가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오래 믿어왔던 내게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시점이였다.
직업 후보들을 많았다.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 바로 된다는 것은 아니였지만, 주변에서 혹은 내 스스로 여러가지 후보들을 많이 찾았다. 누군가는 내게 전기기사를, 어떤 이는 철도 기관사를 이야기했다. 또 나는 내 스스로 노무사,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는 선택지를 추가했다. 그 중 어떤 직업을 가지려고 해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던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내 마음 속에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뿌리 박힌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실패하면 안 된다, 바로 한 번에 안정된 삶을 얻어야 한다.” 빨리 내 삶이 안정되었으면 했고, 그 안정된 직장 속에서 글을 쓰겠다는 생각.
선택의 과정에서 겪은 불안, 그리고 선택 이후에도 계속 수반되는 미래의 불확실성.
그 당시 내게 자주 보던 콘텐츠가 MBTI였다. MBTI로 내 성향을 파악하고, 그 성향과 가장 적합한 MBT에 따른 직업후보들을 찾았다. 그 직업과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비교했다. 때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데도 MBTI의 방향성을 살펴보기도 했다. 내 방향과 MBTI의 결과가 맞으면 위안을, 다르면 초조함을 함께 느끼며 말이다.
당시 영화촬영을 Plan A로, 노무사를 Plan B로 정해두었는데, 오랜 목디스크로 인해서 영화촬영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Plan B인 노무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내 스스로도 노무사라는 직업에 대해 긴가민가했고, MBTI에서도 내 성향이 추천해주는 직업에 노무사와 그와 유관된 직업은 없었다.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시험 준비를 스타트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다가올수록, 나는 어떻게서든 내 MBTI와 노무사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애를 썼었다.
종결욕구.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을 빠르게 끝내버리고 싶은 욕구. 사람에게는 모두 크거나 작게 종결욕구가 있다고 한다. 특히 불확실성이 가득한 환경에서는 인간의 종결욕구는 강해진다.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뇌는 이것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그 당시 MBTI를 통해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 만큼이나 말이다.
현대 사회는 나날이 빠르게 변화해 가며 그 변화 자체는 종잡을 수 없다. 스마트폰이 출시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인공지능이다 4차산업혁명이다 하며 하루 빠르게 기술을 발전해가고 있다. 기술 분야와는 일찌감치 떨어졌다고 여겨지는 문과생들조차도 요즘은 코딩을 배워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합세해 우리의 삶을 불확실성을 우리 삶 전반에 가속화했다. 많은 자영업자들의 삶이 삐그덕거렸고,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동기 얼굴을 모른 채 한 학기를 보냈다.
진로, 연애, 꿈 등 인생 전반에 거쳐서 불확실성이 증가된 세상에서 MBTI처럼 개인의 성향, 연인간의 궁합 그리고 진로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콘텐츠는 인기 있을 수 밖에 없다.
MBTI 인기, 그 이후에는
수백 년 전에는 관상과 사주팔자, 이십여 년 전에는 혈액형과 타로카드가 유행했다. 그리고 현재 그 자리를 MBTI가 차지하고 있다.
MBTI의 인기가 꺼져도, 불확실성을 두려움을 제거하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어떤 형태든 변주되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또 다른 판단 기준 중 하나로 위치할 것이다.
그런 도구 역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일지 기대가 된다. 우리 인간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판단하기에는 시간, 물리적 제약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에 기댈 작은 안식처 정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불확실성에 가득 찬 것처럼 우리 인간 역시도 온갖 변수로 가득 찬 존재다. MBTI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해석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