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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12. 2020

유쾌하지 않은 저녁 식사

새콤달콤해야 할 딸기 스무디에서 시큼한 맛만 나는 것 같았다.


그날은 여러 번 미뤘던 재승의 회사 후배들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퇴근 후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그의 회사 근처로 갔다. 

역으로 마중 나온 그는 고깃집으로 안내했고, 말로만 듣던 후배 두 명이 앉아있었다. 

재승은 후배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우리는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 

그는 후배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 앞으로 고기를 놓아주었고, 나는 자꾸만 치아교정기에 고기가 걸려 천천히 먹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앞에 고기가 쌓였고, 재승은 식은 고기는 자기가 먹겠다며 새로 구운 따뜻한 고기로 계속 바꿔 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후배 중 한 명이 본인은 얼마 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도 예비 신부에게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하지 않는데 형이 진짜 형수님을 좋아하시나 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형이 여자 친구 소개해준 적 처음이에요. 여자 좀 만나라고 해도 만나지도 않더니. 진짜 많이 좋아하는 게 보이네요. 고기 식었다고 바꿔주는 거 보고 찐 사랑이구나 생각했어요.”


재승의 배려가 고맙긴 했지만, 이걸 가지고 찐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빙긋 웃어 보였다. 재승의 후배들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자기 동기들도 다니고 있지 않냐며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의 후배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 이름을 꺼내며 누가 어디 학교를 나왔고, 누구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데 나오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했다.


교정기에 낀 음식 때문인지, 그들이‘이상한 데’라고 말한 학교가 내가 졸업한 학교여서 인지 어쩐지 뱃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불편했다. 


2차로 간 카페에서 딸기 스무디를 시켰지만 그날따라 새콤달콤해야 할 스무디에서 시큼한 맛만 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일 이야기를 했고, 나는 어색해서 빨대만 휘휘 저었다.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그의 후배는 재승과 같이 결혼식에 꼭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얘기했고,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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