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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26. 2020

내 생일

그의 생일에도 내가 느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출근길 엄마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딸 혼자 있어서 엄마, 아빠가 미역국도 못 챙겨주고 마음이 안 좋네. 

계좌로 돈 보냈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꼭 사 먹어. 사랑해.”


아침부터 마음이 따뜻해져 기분 좋게 일하고 퇴근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재승은 회사 앞으로 왔고, 

택시를 타고 그가 예약해둔 곳으로 이동했다.

적당히 어두워진 거리에 노란 조명을 밝히고 있는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외관을 가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재승은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와사비 크랩 샐러드와 소꼬리찜 리소토를 시켰다.


연두색 소스에 크랩 튀김을 푹 찍어 먹으며 톡 쏘는 맛에 코끝이 찡해져 있는 내게, 재승은 쉼 없이 말을 했다.


“여기 되게 유명해서 예약하기 쉽지 않았어.

예약이 다 차서 내 이름으로도 대기 걸고 후배들한테도 부탁해서 걔네 이름이랑 번호로도 대기 걸어뒀잖아. 연락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운 좋게 연락이 왔어. 어때? 여기 괜찮지?”

“오빠. 엄청나게 고생했네. 맛있는데도 데려와 주고, 정말 고마워.”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왔고, 그는 어김없이 나를 바래다주었다. 집 앞에서 재승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조그만 쇼핑백을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사실 더 좋은 거 사주고 싶었는데,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비싼 거 사주면 네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적당한 선에서 골랐어. 다음엔 더 좋은 걸로 사줄게”

그는 그 자리에서 풀어보라며 기다려 주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다홍색 카드 지갑이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선물보다 재승이 식당 예약을 위해 들인 공이 더 고마웠다. 

와사비 소스를 먹을 때 느꼈던 찡함이 코끝에 다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생일에도 오늘 내가 느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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