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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26. 2020

처음 귀를 뚫던 날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채 한참을 뒤척였다.


그 날밤, 머리까지 끌어올린 이불속에서
양쪽 귀가 뜨겁고 콩닥거려서 잠들지 못한 채 한참을 뒤척였다.


초등학교 3학년, 나와 이름 끝 한 글자만 빼고, 성부터 가운데까지 같았던 친구와 잘 어울리곤 했다.

그날 우리는 며칠 동안 계획한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학교가 끝난 후, 우리 집과 반대 방향에 있는 그 친구의 집으로 갔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의 집에 대해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은 고동색 나무계단이 있는 이층 집이었고,

오후 햇살이 집안을 노란빛으로 물들인 따뜻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 친구의 할머니가 계셨고, 나와 친구에게 ‘곰국’을 끓였으니 먹으라며 식탁 위에 누렇고도 뽀얀 빛을 띄는 국물을 밥과 함께 내어주셨다.


나는 그때 잠깐 혼란에 빠졌었는데, 곰국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곰국? 진짜로 그 곰으로 끓인 국? 곰돌이...? 친구네는 곰으로 국도 끓여 먹는구나.’


정갈하게 차려주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어 숟가락을 들어 한입 떠 입에 가져갔다.


‘세상에 엄청 맛있잖아? 곰으로 끓인 국이면 어때’라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곰국이 진짜 곰으로 끓인 국이라고 알고 지냈다.


밥을 배불리 먹은 우리는 2층에 있는 친구의 방으로 올라갔다.

마주 앉아 천 원짜리를 네 장을  챙겨 오늘 우리의 목적인 귀를 뚫기 위해 집을 나섰다.


친구의 귀에는 이미 예전부터 귀걸이가 걸려있었는데 반짝거리는 그 모양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나는 친구에게 귀는 어떻게 뚫는 거냐고 물어보았고, 친구는 내게 총으로 뚫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내 귀에 총을 쏘고, 그러면 귀걸이를 할 수 있게 구멍이 생기는 건가 하고 말이다.

엄마에게 물어봤을 때도 귀는 총으로 뚫는데, 무진장 아프다고 했었기에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엄마는 귀를 뚫고 싶다는 내게 좀 더 커서 아픔을 잘 참을 수 있을 때 뚫어주겠다고 하며 안된다고 했고, 귀걸이를 너무나 하고 싶던 나는 엄마가 안 해주면 내가 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귀를 뚫어준다는 미용실로 들어갔다.

귀를 뚫으러 왔다는 어린 우리를 보며, 원장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우리에게 말했다.


“엄마도 허락하신 거니?”

당당하게 “네”라고 거짓말을 했다.


여러 종류의 귀걸이가 꽂혀있는 네모난 판을 들고 온 원장님은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고르라고 했다.

나는 금색의 동그란 귀걸이를 골랐고, 소독약이 묻은 솜으로 내 귓불을 쓱쓱 문지르더니 귀를 뚫을 위치에

펜으로 까맣게 표시를 했다. 그러고는 말로만 듣던 그 총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총의 모양과 귀를 뚫는 방식은 내가 상상해왔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멀리서 내 귀를 조준한 채 총을 쏘는 게 아닌, 무언가가 앞뒤로 딸깍했다.

내 귓불이 세게 꼬집혔다 놓인 것 같았다.


양쪽 귀에서 두 번 딸깍 한 뒤 잠시 후, 내 귀엔 귀걸이가 끼워져 있었다.


챙겨갔던 4천 원을 지불하고,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왔다.


뚫으러 갈 때까지만 해도 넘치던 패기는 사라지고, 혹시라도 엄마에게 몰래 귀를 뚫고 온 사실을 들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뚫고 온 귀가 너무 아팠다.

옆으로 눕자니 베개에 귀가 스쳐 아팠고, 똑바로 누워있어도 귀가 자꾸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느낌이 들며 아팠다.


귀는 땡땡 부었고, 엄마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며 뒤척이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시고는 왜 그러냐며 나를 채근했다. 결국 엄마에게 귀를 보여주며 사실대로 말했고, 내 귀의 상태를 본 엄마는 미쳤다며 조그만 게 겁도 없이 대단하다며 내 귀를 살폈다. 귀가 너무 부어서 귀걸이를 빼야 될 것 같다고 하셨고, 그 말에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뚫은 귄데... 귀걸이 빼면 막힌다고 한동안 계속하고 있어야 된다고 원장님이 그랬는데....

엄마한테 안된다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소염제를 먹어야 되는데 밤이라 약국도 닫았고, 그러기에 그 아픈 걸 누가 말없이 하고 오랬냐며 나를 혼내며 후시딘을 발라 주었다.


다음날, 자면서 뒤척인 탓에 귀는 더 땡땡해졌고, 결국 귀걸이를 뺄 수밖에 없었다.


빼자마자 귀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느낌은 사라졌지만, 금세 구멍이 막혀버렸다.


그렇게 나와 이름의 한 글자만 달랐던 친구와의 비밀스러운 계획은 하루도 못 가 들통난 채 끝나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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