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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Oct 06. 2020

우리 집 방문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결혼을 밀어붙였다.



“엄마, 아빠 나 만나는 사람 있어.”

“그래? 뭐하는 사람인데? 나이는?”

“회사 다녀. 나보다 9살 많아.”

“…”

대화를 주고받은 뒤, 아빠는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유독 예뻐했던 막내딸이 9살 많은 남자와 연애하는 것도, 갑자기 결혼하고 싶다 얘기하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셨다. 그래도 나를 잘 챙겨주며 좋은 사람이라는 나의 설득에 부모님은 밥이라도 같이 먹게 인사 오라고 했고, 나와 재승은 우리 부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떨리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거래처 회식이라고 생각하지 뭐.”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전날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갑자기 백화점에 가야 한다며 급하게 차를 몰았다.

그는 우리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예쁜 도자기에 들어 있는 도라지청과 생강청을 구매했다.

재승은 그곳에서 가격도 적당하고, 포장도 고급스럽게 잘해준다며 청을 사고는 만족해했다.

집에 들러 선물을 내려놓은 우리는 예약해둔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나는 재승의 차에, 엄마 아빠는 형부 차에 각각 올라탔다.

식당은 한옥 스타일의 룸이었다. 가족과 나, 재승은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 앉아있었다.


“저희가 만난 지 58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횟수로는 거의 매일 만났고,

만나다 보니 괜찮은 친구라 놓치기 싫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재승의 말에 샐러드를 먹고 있던 언니가 ‘풉’하고 웃었다.

만난 지 58일 만에 결혼하고 싶단 말에 놀란 듯했다. 엄마는 좀 더 만나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 같다며 재승에게 음식부터 먹으라고 권했고, 그때까지도 아빠는 아무 말도 없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계획은 어떻게 되냐고 부모님이 물었다. 그는 가진 오피스텔도 있고, 될 수 있으면 온설이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얼마 전 야근이 없는 곳으로 이직도 했기에 따님을 잘 챙겨줄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엄마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더니, 재승에게 “쟤가 보기에만 다 컸지. 아직 애라서 결혼한다 했을 때 사실 놀랐어요. 잘 만나보면서 천천히 생각해 봐요.”라고 말했다. 아빠는 술이 한두 잔 들어가고 나서야 입을 열었는데, 주 내용은 내 딸이지만 철도 안 들고, 생각하는 게 아직 어리다면서 결혼하면 잘 데리고 살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부모님의 우려와 좀 더 만나보고 결혼은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것이 그날 대화의 요지였다. 집에 와서 그가 사 온 청으로 차를 한 잔 마신 뒤 그날의 만남은 정리됐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은 아직 이른 것 같다며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며, 재승의 속을 알 수 없어서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렇게 좋아?라는 물음에 나는 해맑게 대답했다.

“응. 엄청 잘해주고, 착해.” 옆에서 같이 듣고 계셨는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이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이 잘해주지. 좀 더 만나봐.”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승은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결혼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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