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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Oct 13. 2020

프러포즈

결혼 준비를 하기 전에 프러포즈를 먼저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왠지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어.’


결혼한 지인들에게 어떻게 결혼하게 됐어?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위의 두 가지였다.


나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건가?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결혼 이야기를 했고,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28살 즈음이면 결혼하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나이에 옆에 있는 사람이 재승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던 것보다도 '남들 다 하니까’ 혹은‘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크게 나쁘진 않겠다’라는 생각이 컸다. 그 해 결혼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어서 더 쉽게 휩쓸렸던 것 같다. 

심지어 9살 연상과 결혼한 친구가 3명이나 있었다.


재승의 부모님은 어차피 할 거 재승의 나이가 있으니 올해를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물 흐르듯’이라기보다‘폭포에서 물이 쏟아지듯’ 나는 눈 깜짝할 새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재승과 올해 안에 결혼하는 것’ 이것은 어느 순간 재승과 나의 관계에서 당연시되어있었다.


재승은 결혼을 빠르게 밀어붙이느라 정신없어서인지 내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어? 왜 프러포즈도 안 하고 결혼 얘기가 오가는 거지? 프러포즈 언제 할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맘때 희주 언니는 회사 사람들에게 이 뮤직비디오 봤냐며, 이승철의 My love를 보여주곤 했다. 비연예인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에게 프러포즈 준비에서부터 프러포즈 마지막 순간까지를 담은 내용의 뮤직비디오였다.


“평생 못 잊을 프러포즈겠다.”라고 말하는 내게 희주는 말했다

“근데 꼭 남자가 프러포즈해야 해? 나는 나중에 내가 할 건데.”

‘그렇지 굳이 남자가 해야 할 필요는 없지. 그래도 나는 오빠한테 프러포즈받고 싶은데…’


내가 받은 프러포즈도 아닌데 뮤직비디오를 보는 내내 뭉클하고, 괜히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곡도 좋고, 뮤직비디오도 인상 깊었던지라 재승에게 “오늘 희주 언니가 이 뮤직비디오 보여줘서 봤는데 되게 감동적이었어!”라고 말하며 그에게도 보여주었다. 흐뭇하게 보는 나와 달리 그는 너무 상업적인 것 같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결혼 준비를 하기 전에 프러포즈를 먼저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


프러포즈를 하고, 상대의 동의를 얻은 뒤 결혼 준비의 순서로 넘어가는 상황을 바라 왔었는데 현실은 프러포즈 없이 이미 결혼 준비 단계로 넘어와 있었다.




어렸을 때 했던 슈퍼마리오 게임에서 동전을 다 못 먹었는데 화면에 밀려 다음 블록으로 넘어가 버린 

느낌처럼 무언가 빠트린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내게 이 곡은 라디오에서 나올 때, 회식 자리 노래방에서 들려올 때면 씁쓸한 기억이 떠오르는 곡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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