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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새벽 Dec 28. 2018

0. 여름의 크리스마스

어렸을 때부터 작은 꿈이 있었다. 산타모자 쓰고 서핑하는 사람 보기.



연말에 가족끼리 여행을 가자. 이번 연도 초부터 나온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연말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하셔서 가족-1 여행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세 모녀의 여름 여행이 시작된 것은 그리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물을 무서워하시던 어머니는 이 여행을 위해서 1년 동안 매주 수영을 다니셨고, 수영은 (드럽게) 못하지만 여름 레저 스포츠에 미친 언니는 매일 압주를 했다.(?)



 

ABZU 라는 스팀의 스쿠버다이빙 힐링 게임. 이거 할 시간에 수영을 배워 언니....




일단, 여름 나라로 가기로 했다. 한국은 너무 추워 위험해. 따라서 마찬가지로 추운 일본 등의 나라가 기각되었다. 너무 멀지 않은 여름나라 후보들 중에서, 이름만 들어도 드넓고 예쁜 바다가 펼쳐질 것 같은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가 당첨됐다. 걱정이 많은 어머니를 위해 패키지 여행을 선택했고, 자유롭고 싶은 언니를 위해 하루 자유 여행이 포함된 패키지로 골랐다. 이 선택은 꽤나 만족스러운 편이었는데, 일단 패키지 여행을 고른 것은 한국인 가이드가 TMI를 대방출하기 때문에 낯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많이 덜 수 있었다. 또 자유여행을 포함한 패키지였어서, 하루 정도는 우리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그게 다행이었다.




현실 : 산타 복장을 하고 서핑을 하는 건 쉽지 않다.


25일 크리스마스에 나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25일을 끼고 여행을 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크리스마스가 여름인 나라가 있다고 가르쳐주실 때부터, 나는 언젠가 여름 크리스마스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산타 모자를 쓰고 서핑하는 서퍼였다. >>>>>>>>>>






사실 여행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매일 울었다. 도망가고 싶어서 선택한 여행이 두려웠다. 크리스마스와 생일과 연말, 퇴사와 내가 원하는 삶, 2018년이라는 과거와 2019년이라는 미래, 죽어야 한다와 살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번뇌하는 세진은 도망치는 것조차도 두렵다. 그렇게 전날까지도 울다가 부운 눈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가기 싫었다. 그래도 비행기에 올라탔다.




(입으로는 가기 싫다고 해도 몸은 비행기에 올라탔군....)




도망치고 싶어서 선택한 여행까지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18.12.23 - 18.12.27

in Kota Kinaba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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