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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새벽 Jan 06. 2019

회사 앞 자취 라이프

그래도 좋은 게 더 많았을걸



회사 앞에서 자취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사람들한테는 회사 옆에 사는 걸 비밀로 해라, 안 그러면 야근이 많아진다 등등. 귀찮아서 그냥 진실을 말했다. 실제로 부장님이 늦은 회식 이후 나만 택시비를 안 챙겨주신다든가 했지만(부장님 저 뒤끝 있어요) 그거뿐, 회사 앞에서 자취하는 건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득이었다.

일단 대중교통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 집의 첫 인상은, 나랑 잘 어울린다. 였다.


운 좋게도 깔끔 떠는 나와 맞는 새 집이었다. 모든 게 다 차가운 톤이었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다.


회사 바로 맞은편, 최고의 입지 (끄덕)










회사 앞 자취로 변한 것들

자취 로망이라고들 한다. 현실과 로망 그 사이 어디쯤...






0. 한 달에 10만 원 가까이 나오던 대중교통비 > 1만원

아예 안 돌아다닌 건 아니라서 버스 지하철 합쳐 만원 정도. 택시비는 한 달에 이만 원쯤이려나. 일주일에 5일, 한 달에 20일이라는 시간을 거의 집과 회사의 근처에서만 생활하게 되니 자연스러운 결과기는 하다. 평일 약속은 잘 잡지 않는 타입이라, 기껏해야 집 앞에 사는 다른 회사 메이트 오빠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게 다였다.


5분 거리 회사 휘트니스 센터도 다녔(었)음. 과거형입니다.




1. 유통기한을 자주 검색하게 되었다.

유통기한을 검색하는 이유는 사실 '날짜는 이미 지난 거 알겠고, 그래서 얼마나 더 먹을 수 있는데?' 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검색해보고 조금 지난 것도 잘 먹게 되더라. 특히 발효식품에 대해 너무 관대해졌다.


나만 그런건 아닐거다.



2. 그래서 건강이 나빠졌다.

새집증후군으로 인한 건조함, 먼지 등과 함께

자꾸 이상한 걸 주워 먹으니까 장 건강까지 합세해 피부까지 엉망이 됐다.

피부만이겠는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온갖 병이 다 생겼다.




3. 맛집에 집착을 하게 된다.

원래 나는 맛집을 그렇게 찾아서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언제나,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왜냐면 맛없는 건 집에서 충분히 많이 먹어봤다. ( = 내 요리 )


참고로 전부 다 다른 날이다.
또 글 쓰다가 갑자기 분위기 맛집추천.





4. 과일은 주스로 사 먹는다.

자취생에게 쥬시라는 브랜드는 거의 뭐 엄마다. 엄마 보고 싶으면 쥬시를 간다. 특히 수박쥬스.

스타벅스에도 과일컵을 팔지만, 매일 먹기에는 비싼 편이다보니. 쥬시짱.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과일은 귤 정도. 물론 이것도 절반은 뭉개져서 버린다.


라고 말해놓고 사진은 안주로 먹는 과일뿐이네요.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죠?






5. 책상인지 식탁인지 선반인지 짐짝인지

모를 것들이 많다. '식탁'의 목적을 가진 것을 굳이 구매하지 않았는데,

항상 작업하면서 옆에 두고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뭐 그냥 서서도 잘 먹는다.

침대에서도 먹는다. 안 흘리면 되는 거지 뭐. 엄마가 보면 등짝스매싱일 것들.


창가 옆 침대에서 맥북과 함께 샐러드를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6. 생각보다 나는 개 나약한 존재였음요

예전에는 무거운 거 들지 못하게 한다든가 하면 약간 자존심이 상하곤 했는데

( 왜!! 나도!! 들수있써!!! 무시하지마 문다!!! 같은 마음 ) 이젠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고정시킨 행거랑, 애인이 고정시킨 행거는 다르더라.

아빠가 무거운 거 들어서 옮겨주니까 새삼 아빠의 존재가 필요해졌다.




7. 내가 옷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을

본집에서는 드레스룸은 부모님 차지, 내 옷은 여기저기 분할되어 나누어져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되니 여기저기 숨겨져 있던 내 옷들을 다 꺼내와서 이 좁은 집에 박아야 했다.

매 월마다 10-20만 원 정도의 옷 소비를 꼬박꼬박 해왔는데

자취를 시작하고 옷을 사는 행위가 뚝 끊겼다. (사실 먹느라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8. 게을렀던 것에 부지런해졌다.

반대일 줄 알았다. 귀찮아서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사는 거 아닐까 걱정했다.

아니더라. 내가 치우지 않으면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러다 보니까 아 어차피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할거, 하면서 치우더라.


그리고 역시 자취 로망은 집 꾸미기 아니던가. 집을 꾸밀라면 부지런해져야만했다.





9. 그렇지만 원래 부지런했던 것에 게을러졌다.

커피를 타 먹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퍼 먹기 귀찮아서 먹지 않는다.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아예 안 먹는 거일 수도. 역시 사 먹는 게 최고다...




10. 돈 << 넘사 << 건강

'건강보다 중요한 건 돈!'이라는 마인드에서 '돈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뭐 건강을 잃고 나니까 드는 생각일 수도.




11. 냉장고 = 음식물 쓰레기장

생각해보면 냉장고의 기능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한다. 여서. (뭔가 논리적인 것 같음)

물론 '상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주로 냉장고로 들어간다.

상하지 않게 보관하다가, 상하기 직전에 내버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발효식품의 유통기한에 관대해졌다구.





더 많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대충 이 정도.

아무튼 만족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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