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먹고 싶은 거 있어?"
"마이구미"
일주일 뒤 한국에 도착하는 내게 친구는 뭐가 제일 먹고 싶은지 물어봤고 나는 고민 없이 마이구미를 택했다. 포도가 그려진 초록색 봉지를 뜯으면 밀봉되어있던 포장지 안 오랜 시간 축적된 진한 젤리향이 코를 강하게 때린다. 포도보다 더 포도향 같은 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젤리를 한 입 베어 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젤리보다 나는 이 향이 그리웠다.
미국에서 꽤나 오래 유학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구미의 달콤한 냄새처럼 뇌 한켠에 고스란히 저장된 한국의 향이 무척 그리웠다. 여름 장마철, 젖은 양말로 서울 도심을 누빌 때 풍기는 비 비린내, 아파트 지하 주차장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오랜 추위 끝에 봄을 알리는 향긋한 봄 내음을 품은 공기를 한시라도 빨리 들이마시고 싶었다.
사람들의 냄새 또한 생각났다. 좁은 한국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며 서로의 냄새를 교환한다. 지하철과 버스, 카페와 아파트 단지에서 서로의 옷깃을 부딪히며 좋든 싫든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향을 코로 주워 담는다. 고개를 돌리게 되는 좋은 향수부터 무더운 날 축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학생들의 퀴퀴한 땀 냄새까지. 의식도 없이 마구 흡입한 냄새 분자는 그날의 색채를 더하고 훗날 비슷한 냄새를 우연히 맡게 되면 그날의 추억이 되살아나게 도와준다.
냄새는 과거 찰나의 순간을 가장 입체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오감이다. 아직도 락스 냄새를 맡으면 초등학교 시절 동네 수영장 창문에 비쳤던 물에 반사된 햇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사우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증기 냄새는 필연적으로 집 근처의 목욕탕을 생각나게 만든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시켜줄 냄새의 목록은 다양하다. 다시 맡게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그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다.
낯선 곳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의 냄새가 생소하기 때문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향의 부재 탓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의 어떤 향도 맡아본 이력이 없다. 처음 맡아보는 향은 마치 처음 마주하는 사람과도 같다. 재미있고 신선하지만 결코 반가운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 반가움은 오랜 시간 함께 나눈 공간과 시간의 틈에서 천천히 발효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냄새를 미국에서는 마주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점심시간, 건조하게 굳은 피자와 치즈 커드가 풍기던 향과 집 근처 골목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고무풍선을 코 앞에서 라이터로 태우는 듯한 대마초 냄새, 길거리에 차에 치여 죽은 스컹크의 지독한 방귀는 내 코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곳에 함부로 정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미국에도 분명 향기로운 향 또한 많았을 텐데 나는 그런 고약한 악취만 취사선택해서 기억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냄새가 가득한 한국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출국하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한국에서 먹어야 할 음식의 리스트와 만날 친구들을 노트에 적어놓았다. 그날 내가 노트에 적은 것은 다시 맡아야 할 냄새의 리스트였다. 오랜 유학으로 색채가 얕아진 추억을 다시 진하게 회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향의 목록이었다.
아직도 방학이면 한국에 들어와서 부지런히 내게 향을 입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부딪히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몸에는 갖가지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있다. 그리 좋은 향은 아니지만 분명 그리울 향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킬 그런 향이다.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더 진하게 입힐걸 후회할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