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위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머가리 꽃밭이었던 썰에 관해
코로나 19 시대가 저물어 감에 따라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온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언택트와 온라인으로 하는 가벼운 만남. 옛말로 번개라고 했고, 요즘 말로는 소셜링 정도가 될까. 그 사람에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갖는 만남엔 의외가 아니라 실로 여미새와 남미새가 당연히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셜링(앞으로 모든 온라인을 통한 만남은 소셜링으로 통칭해서 사용합니다.)에만 많은걸까? 정말로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만약 당신 주위에 없다면, 그것은 주위에 정말좋은 사람들만 있었거나,
또는 당신이 나처럼 머가리 꽃밭으로 살아온 둔한 사람일 것이다.
집에 있는건 한달에 한 번이면 족하다라고 생각하는 필자는 코로나 시대에 아주, 무척, 굉장히, 많이 힘들었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모임들을 뒤로하고 연고 없는곳으로 이사했을 시기와도 맞물렸을뿐더러 누군가를 만나고자 해도 인원 제약 및 시간 제약에 걸려서 진득하게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소셜링이라는 단편적인 만남에 여미새/남미새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 글역시 진부한가? 라고 생각한다면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서론을 던졌을 뿐 본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지금껏 3N년을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내 주위(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초중고대 친구들, 회사 동료 등)에서 여미새/남미새를 만나 본 경험이 없었다. 그들과 이성이 함께하는 자리는 늘 그랬듯 그저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썸남과 있다가 동성친구를 불러도 그저 유쾌함의 지수가 높아졌을 뿐 '내가 찍은 남자/여자를 쟤가??!', '왜 끼부리지???'와도 같은 일은 없었다. 백 퍼센트. 그래서 인간에 대한 불신이 거진 없는 상태였는데 이번에 겪은 일을 계기로 '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게 이런 말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3년을 넘게 보았다
나는 그녀가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펑펑 울 때 이온음료와 수건을 들고 나갔다
나는 그녀와 단 둘이 술을 마시거나, 카페를 가거나 나가 논 적도 열손가락이 넘어간다
그녀는 중증 남미새였다
그녀와는 직장동료 사이로 나와 4살 차이가 나는 사람이었다. 마르고 키가 큰 편에다가, 강한 인상에 말수도 없었기에 내게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억지로 놀자 놀자 해 봤자 역효과가 나는 걸 알기에 아침 저녁으로 인사 정도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집가는 버스가 같아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졌다. 친해진 까닭은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이랑 어쩌다가 친해졌나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으례 '그...러게요? 왜일까요?' 라고 답하고는 한다. 드물게 어떤 일이 계기/터닝포인트가 되어서 친하게 지내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생각외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주관이 무척 뚜렷했고, 타협을 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의외로 내게는 굉장히 유하게 대해주며 친절하고 착하게 대해주었다. 우리둘의 퇴근길 한시간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는 나와 반년에서 일년 정도를 지내다가 직장을 옮겼고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 만났다.
옆에서 지켜본 그녀는 꽤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반년 정도 넘게 만나고 있었고 그들은 항상 술을 마셨다. 그리고 싸우고. 여자쪽에서 먼저 헤어짐을 말하는 경우가 잦았고, 남자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보다 꽤 어린 내가 봐도 저런 연애가 어른의 연애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 정도라고 생각했다. 둘은 참을성이 부족했다. 본인들의 주량을 몰랐고(알고 그랬다면 그또한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항상 술에 먹히는 데이트와 마무리는 항상 싸움으로 끝났다. 그녀를 달래주거나 위로해주는건 어쩌다보니 내 몫이었다.
결국 그녀가 이별을 한 지 3개월이 조금 넘어갔을 때 즈음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어떤 카페의 사장님에게. 그녀의 말에 따르면 '뿅'하고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키는 나만하긴 하지만 사람이 괜찮고, 착하고, 유머러스하고 일단 귀엽다고. 아,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자주 가는 헬스장 트레이너였나 사장이었나 그랬는데 머리가 좀 빠지긴 하고, 자기보다 작긴 했지만. 플러팅을 해도 넘어오지 않고. 항상 자기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한다고. 그냥 포기하라는 말 뿐이 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연애는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연애가 연애가 아니기를 했던 것일까. 항상 붙잡은 이유가 연애가 쉽지 않아서일까. 나보다는 그녀 스스로 해야할 고민이라 생각했기에 어깨만 토닥거릴 수 밖에 없었다. 헤어지고 3개월 내에 몇 번의 짝사랑을 시작하고 0고백 2차임이 끝난 며칠 뒤 사단이 벌어졌다.
그녀는 나와 술을 마시다가 항상 막차때 집으로 갔다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며 집에 갔다
그녀는 오늘 첫차를 타고 집에 갔다
오랜만에 마음에 든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민수.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귀엽네'로 시작해서 '갖고싶다'를 거쳐서 '어 나 쟤 좋아하네.'의 결론으로 가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사람의 감정이 호감인지 호의인지 애매한 관계 속에서 조금씩 불을 지피고 있던 찰나에 상대가 제안을 해 왔다.
'너만 괜찮으면 우리 2:2로 만날래?'
예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딱 한번, 내가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밥 사준다면서 만나자고 했던 이후로 둘이 1:1로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 자리에 처음부터 그녀를 점찍어 두지는 않았었다. 원래 있었던 후보 두 명이 스케쥴 조정하다가 빠그러지고 결국 연령대와 시간을 고려해 그녀가 같이 나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약속 당일 아침에 같이 두 시간 요가를하며 이너 피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가 짝사랑했던 카페 사장이 일하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한여름의 해가 떨어지기에 약간 아쉬운 시간, 만남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괜찮았다. 4명중 반절은 E였고, 서로 아는 사이었고. 민수가 데려온 경태 역시 유하고 성격이 밝았다. 서로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떤 관계고 등등을 말하며 밝은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술을 먹기위해 점심에 양파랑 마늘만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나이차이 얼마 안나니까 그냥 친구지라는 말까지. 인생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할 법한 이야기들로 1차를 꾸려나갔다. 진득한 고기 구워지는 냄새와, 알싸한 소주의 쓴맛. 그리고 매캐하지만 서로의 기분을 적당히 살피는 눈치. 여러가지 다른 공기가 섞인 자리였다.
경태는 여기서 대중교통으로 적어도 한시간 이상은 걸리는 곳에서 왔다. 11시에는 무조건 집에 가야 한다는 그녀의 말 때문에 아주 먼 길을 온 것이었다. 이 것 때문에 나도 조금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삼십대 중반 여성이 자기가 갈 시간도 내팽개치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했다.
우리는 장소를 옮겼고, 거기에서부터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밤하늘의 별처럼 맑은 반짝거림이 아닌, 어두운 동굴에서 이끼 사이에 있는 개미의 등껍질같은 반짝거림. 무언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그때 눈치 챘어야 했다.
'꼭 그런애 있어, 동성이랑 있을 때랑 이성이랑 있을 때랑 다른 애들'
'어떻게 다른데?'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야. 무조건.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래?'
'눈이 돌아.'
진짜. 눈이 돌아 있어.
2차는 걸어서 5분. 내가 다른 사람들과 자주 왔던 나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갔다. 자그마한 이자카야지만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4인석이 있기에 엉덩이를 얹어 놓을 곳은 있었다는게 다행이었다. 2차로 옮긴 시간은 7시가 좀 안 되어서. 주량이 제일 약한 나를 제외한 나머지사람들은 화요를. 나는 사와를 주문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가 지금 내 심정이다. 분명 본 것도 많고, 들은것도 많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분명 나인데 말로 서술해 풀어내려고 하니 머릿속에서 여러가지가 비비 꼬인 느낌이다. 그녀와 나는 네 살 차이가 났는데, 그녀는 주인공이 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이가 적진 않으니까 진중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마이크가 내게 넘어오면 갑자기 '꺅!'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찌혜뉸 꾸론고 힘뜰오!'처럼 혀를 잃어버린 소리를 내고는 했다. 그러면 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넘어가고,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얼마간의 시간동안 나는 마이크를 잃어버린채 그 공간에 머물렀다.
*지혜: 편의상 가명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지 '야.' '너.' '민수야'와 같은 시건방진 말을 하라는 뜻이 아닐텐데. 그녀는 선을 오락가락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성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자신의 주관을 모두에게 피력했다. 민수는 지친 기색과 피곤함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었다. 그자리에서 시계를 보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도무지 일어나지 않고, 어떻게든 유쾌하게 이어가려 노력하던 그녀는 11시가 넘어가기 직전부터는 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 몸. 바디랭귀지. 산이의 바디랭귀지가 환청으로 들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1차에서도 했었다. 턱을 간지럽히는 것도. 중간에 큰 테이블을 무시한채로 움직이다 물건을 엎지를 뻔도 했다. 그 농도가 짙어지고 대화의 수위가 짙어질 무렵부터 나는 귀를 조금 닫기로 했다. 문제는 3차였다.
생각해보니 난 그녀와 이성이 낀 술자리를 지난 3년간 가져본 적이없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슬슬 짜증이 돋아나고 있었다. 3차를 할만한 적당한 공간을 찾지 못한 것도 한몫 했지만. 계속 징징거리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으려니 골치가 아팠다. 잠시만. 가만히 있어봐 잠시만. 후웅 찌혜힘드로. 알겠어.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단순히 그녀의 말도안되는 애교와 징징거림에 지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초면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자리. 본인과 친한 사람과 또 나와 친한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리에서 추태를 부리는 사람이 내가 데려온 사람이라는 것이 더 불쾌했다. 눈에 띄는 광역 여우짓이 거슬리는건 그 다음이었다. 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성이 미치게 고프고 좋아도 적당히 마무리를 지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었다. 마치 부하직원들을 거느린 부장처럼, 그녀는 그 자리에 군림하는 퀸이었다.
'편의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래.'
3차 자리를 가까스로 찾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민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난으로 풀어보려 했지만 풀리지 않을 표정이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장난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일단 바깥으로 빼 내야 한다. 다년간의 싸움나기 직전의 술자리를 겪은 머릿속 데이터베이스가 말을 걸었다. 빨리. 조속히. 저사람을 데리고 이 자리를 피해.
'나는 정말 이해가 안가. 왜 그러는거야?'
우려하던게 터졌다. 그녀의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에 기름폭탄을 불길에 던져 놓은 것처럼 터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