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망해봐야 성장한다고?

괜찮아, 기다려줄게

by JinSim


오랜만에 치료실을 찾은 반짝이.

반짝이는 치료실에서 슬라임 만들기만 하려 한다. 슬라임 만들기를 통해 치료사인 나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이거 가져와라, 저거 치워달라, 건드리지 마라, 참견하지 마라,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말투는 어디서 배운 걸까... 가끔은 정신이 혼미 해질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친구다. 충분히 미술적 감각이 훌륭한 친구인데 치료실에만 들어서면 작품을 제작하는데 망설임이 크다. 짧은 시간에 양질의 결과물을 원하지만 그게 점점 힘들어지는 그런 연령이 된 것이다.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시간과 노력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어쩌면 당연한 원리를 역행하려 한다. 새로운 활동을 망설이고 주저한다. '망하면 어떡하지?'가 주된 이유로 보인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확신이 낮아서 그런 것이리라 이해하지만 아이의 재능을 좀 더 빛나게 해주고 싶은 건 내 욕심일 수도 있겠다.


오늘도 슬라임을 만들겠다기에 슬그머니 팔찌 만들기 키트를 보여주니 금세 이걸 하겠단다. 역시 내 예상대로 빠른 시간 안에 좋은 결과물이 나올법한 활동을 선택한다. 감각이완 작업인 슬라임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양한 활동경험도 중요하다는 나의 사견이 들어간 제안이었다.


오늘 좀 지각을 한 데다 다음 학원스케줄까지 빡빡한 반짝이.


"나 팔찌 4개 만들어야 돼요."

"4개나?"

"곧 여행 가는데 친구랑 친구 동생이랑 내 동생 거랑 내 거 만들어야 해요."

"그래 일단 오늘 만들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아니 아니! 오늘 4개 만들 거라고요!"


여러 가지 반짝거리는 비즈들이 담겨 있는 통에서 마음에 드는 비즈를 골라 소분해 놓는다. 이 파츠들은 친구와 자기 것에 꼭 들어가야 한다며 예쁜 나비모양 비즈를 따로 옮겨놓았다. 반짝이는 구슬들을 집중해 뀌어나가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고도로 집중하는 모습이 낯설지만 흐뭇했다. 친구의 팔찌를 하나 완성 하고는 두 번째 팔찌는 친구의 동생것이라고 했다. 동생이니까 조금 작게 만들어야겠다며 신이 난 모습이다. 팔찌 두 개를 만들고 이제야 자신의 팔찌를 만들겠다고 했다. 앞서 만든 팔찌들은 연습용이었는지 자신의 팔찌는 구슬 하나하나 고르는데 신중을 가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반짝이가 간과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다되어 미리 언질을 주니 다급한 마음에 더 꿰어지지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니 반짝이의 얼굴에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학원 셔틀 시간에 조금 늦어도 기다려 준다며 반짝이는 마지막까지 서둘러 구슬을 뀌어본다. 조금 늦을 각오로 겨우 구슬을 다 뀌어놓고 내게 마지막 매듭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매듭을 짓다가 그만 줄이 터져버려 구슬이 와르르 흩어져 버렸다.

아이의 마음도 와르르. 울음이 터져버렸다.

터져버린 팔찌

결국 세 번째 만들던 자신의 팔찌는 완성하지 못하고, 이미 늦어버린 셔틀시간에 울면서 치료실을 뛰쳐나갔다. 걱정이 되어 반짝이 어머니에게 연락드렸더니 안 그래도 반짝이와 통화를 했고, 학원셔틀에서 울고 소리 지르며 학원 안 가고 팔찌 만들러 가겠다는 반짝이에게 화를 내버렸다고 한다.

"선생님이 팔찌 터뜨렸다고 하던데요?"


원망 섞인 목소리에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몸에서 기운이 쭈욱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다가 팔찌 줄처럼 탁 터져버린 그런 기분.


어머니에게 아이 스스로 감정을 해결하고 추스를 수 없기에 누군가를 원망하며 풀고 있는 거라고 설명하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연령이라 이런 과정들을 통해 시간개념과 자기 객관화 능력을 조금씩 길러가는 시간이 될것이라고, 어머니도 힘드시겠지만 곁에서 잘 지지해 주십사 말하며 다시 한번 아이가 감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돌아간 상황에 대한 사죄를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늘 뭐가 그렇게 미안한걸까?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내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반짝이에게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이 반짝이 거 다시 잘 끼워놨어~
반짝이 울고 가서 선생님이 엄청 걱정되네...
기분 풀고,
다음 주에 만나자!^^






요즈음 들어 나의 능력치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요즈음 인지심리학 책들을 읽으며 나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려는 노력 중이다. 물론 몹시도 취약한 인간이지만, 시도 자체가 기특하다고 스스로 칭찬해 본다.


메타인지(meta認知, 영어: metacognition) 또는 상위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 · 발견 · 통제 · 판단하는 정신 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higher-order thinking skills)이다.
메타인지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배움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한 전략들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메타인지에는 두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다: 인식에 대한 지식과 인식에 대한 규제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자신의 생각(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자기 인지 능력을 뜻한다. -위키백과


메타인지라는 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메타인지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길러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메타인지라고 하니 뭔가 어렵고 거창해 보이지만, 다양한 경험과 실패 그걸 극복해 보는 과정 속에서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실패의 경험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노력 자체가 아이들에 주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능의 부모는 아이가 실패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실패는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을 잊은 채 아프고 힘든 것이라는 신념 속에서 사랑이라는 허울을쓰고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어른되기 참 힘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물림을 끊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