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종결통보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날,
캔슬된 타임이라 잠시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서류정리를 하고 있는데 센터장이 이야기 좀 하자며 내방으로 들어선다.
"ㅇㅇ이 이번 달까지만 하고 다음 달부터 안 온대요."
여행으로 마지막 주는 오지 못한다고 전해 듣고 방학 동안 보충 스케줄을 잡으려는데 갑자기 종결 통보를 받은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워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썩 유쾌한 소식은 아닌지라 내 표정이 신경 쓰이나 보다. 좀 가식적인 미소를 띠고 있었나?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장이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의 기능이 너무 좋지 않아 뭐라도 자극을 주어 호전을 기대하며 먼 길 마다치 않고 유능한 치료사가 있다면 열심히 치료실을 전전하던 어머니였는데, 발달이 너무 더딘 데다 장애의 원인이 유전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나서 일부분 낙담하신 상태라고 했다. 낙담 이후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절실하지 않아서일까? 이런저런 핑계로 치료사를 갈아치우기 일쑤였다고 했다. 나와 처음 시작할 때도 센터장이 3개월 이상 할게 아니라면 시작도 말라고 했었다고 한다. 아이 앞으로 나온 바우처를 소진하려고 내게 보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활동이라는 필요성보다 그저 바우처를 사용하고 가능하면 아이의 기능성장도 약간 기대하는 목적으로 내게 온 아이였다. 나름은 애쓰고 마음을 많이 썼던 아이였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처음 악속했던 3개월이었던 것이다.
3개월의 시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첫 만남. 치료실로 들어오는 것부터 난관이 있었다. 치료실 문턱을 넘는 것부터가 힘겨루기다. 어머니가 어르고 달래 치료실에 들어서면, 불편한 기색으로 나와의 시선을 피하며 뛰쳐나갈 궁리를 하다 냅다 뛰쳐나가서는 부모님 대기실에 드러 누워버린다. 일으키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격렬하게 팔다리를 휘 저으며 공격한다. 유일하게 어머니가 나타나 야 일어서서 치료실로 들어온다.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닥에 드러누워 버둥거리던 아이. 갑자기 할퀴거나 목걸이나 팔찌,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낚아채 공격하는 아이.
그래도 아이와 색칠하기도 하고, 클레이로 만들기도 하고, 물감을 짜서 데칼코마니 작업도 나름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일주일에 한 번뿐인 만남인지라 아이와의 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사실 ㅇㅇ이와 아직도 라포형성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 같다. 늘 거부하는 아이와 실랑이하는 내가 작은 공간에서 함께하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썼지만, 나의 마음은 전달되지 않았다. 아이는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고 다가가는 나를 자신의 세상에 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밀어내기만 했다.
나는 애써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인내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리라...
어머니가 종결을 결정한 가장 큰 계기는 실랑이를 하던 중 내 목걸이가 터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극도로 아이문제로 타인의 시선이 예민한 어머니에게 큰 불편함으로 다기 온 듯하다.
종결사유는 아이가 너무 싫어하고, 거부하는 아이가 선생님도 버거워서일 거란다. 상담 때마다 너무 힘들게 해서 선생님께 죄송스러워서...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의 무능력함으로 여겨졌다. 나는 오기를 부리듯 꾸준한 치료개입이 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라포형성에 조금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나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속뜻이 내가 먼저 그만둬주기를 바란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며칠 후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종결통보'였다.
자기 욕심으로 아이도 나도 힘들게 한 것 같다며,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센터장에게 내가 하는 치료가 터무니없고, 집에서도 다 하는 거라고 불만을 표하셨다는데, 아이가 할 수 있는 활동부터 함께 하며 차근차근 라포형성을 하고 있다는 나의 설명을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다. 시작부터 종결을 염려하셨구나... 내 마음이 꼬였는지 탐탁지 않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내게 종결은 거절의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가족들과 짧은 휴가차 바다엘 갔다. 잠자리가 바뀌어 뒤척이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창밖 하늘에 오늘의 태양이 떠오를 예정이라며 길게 붉은 레드카펫이 깔려있다.
잠시 뒤 아름다운 컬러의 향연 속에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경이로운 아음다움에 감탄하며 함께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한 아침을 맞았다.
휴가를 보내며,
나는 그 3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고,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의 소중함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충전되었음을 느꼈다.
여전히 종결은 애써 태연하려 해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괴로워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 나은 치료사가 되려고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