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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읽어드립니다.

여정의 안내자

by JinSim

너무 소극적이라 염려가 된다는 어머니의 의뢰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치료실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2학년 치고는 키가 꽤 크고 눈매가 선명하니 잘생긴 얼굴이다.

입구부터 쭈뼛쭈뼛 걸음걸이가 몹시 부자연스럽다. 반갑다고 인사를 했지만, 눈조차 맞추지 못하는 아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는 뭔가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하며 나와 처음 만났다.


"안녕! 나는 진심선생님이야. 우린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함께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거야."

"네~"

"ㅅㅈ이는 뭘 좋아하니?"

"축구요"

"우와! 축구 좋아하는구나! 선생님은 미술활동 좋아하는데 관심 있는 활동 있어?"

"나 그림 못 그려요"

"잘 그리고 못 그리고 가 중요하지 않아. 그냥 즐겁게 시간 보내보자"

"네~"


시선은 아래로 떨어지고 "네~"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한다.


그림을 그려보자며 종이를 내밀어본다. 크게 거부하지 않고 종이와 연필을 받아 들더니, 순순히 내가 던지는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림을 그리면서 힐끗 나를 살핀다. 특이한 설정의 그림을 그리는 아이. 눈이 마주칠 때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아이에게 안심을 주는 신호였을까?

'나는 장난꾸러기예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신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림을 완성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처음엔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다가 점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질문을 하며 아이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흩어진 이야기를 잘 모아 정리를 해주는 건 나의 역할이다.

자신의 그림 속 이야기에 푹 빠져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며 재잘재잘 이야기 속 세상을 확장시켜 나간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하나? 신나게 떠들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 보니 마칠 시간이 다 되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 시간.

들어서는 어머니가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밖에서 아이가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는 걸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아이도 나도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던 모양이다.


아이의 그림을 함께 보며 오늘 아이와 이야기 나눈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엄마의 관점으로 그림을 읽어주었다.


"배경이 망망대해예요."


'망망대해'라는 단어에 어머니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이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를 보며, 아이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져서 나도 뭉클해져 버렸다. 아이의 첫 그림 한 장에 아이와 나, 그리고 어머니까지 모두의 마음이 깊이 연결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는 날이었다.



내가 미술치료사라고 하면, 그림 한 장을 가져와 해석해 달라는 문의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림만 보고 그림을 그린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림을 통해서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그걸 잘 읽어주는 것.

그로 인해 내담자가 창의성을 발휘하고,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


치유를 향한 예술적인 여정을 함께 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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