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로 돌아간 우리 엄마
열일곱살.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고향을 떠났다. 서울 사는 언니네 집에 얹혀 살며 여공으로 일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부러워 학비를 모았다.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 고등학교를 다녔다. 실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성적도 좋았다. 고민 끝에 대학은 포기했다. 대신 세 살 터울 막내 여동생을 같은 학교에 진학하게 했다. 동생과 둘이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며 각자 학교와 회사를 다녔다. 주산을 잘 했고 경리부에서 일했다.
하루는 어느 잡지 추억의 사진 공모전에 친구들과의 사진을 보냈다. 휴전선 인근에서 군복무 중인 청년이 그 잡지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며 편지를 보내왔다. 불쑥 휴가 때 해운대까지 찾아와서 버스 종점 빵집에서 만났다. 편지를 보내던 남자는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1986년부터 빠짐없이 7월 17일 제헌절이면 여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야, 아들 딸도 축하해줘, 하고 새삼스레 사랑을 고백한다.
서울 성수, 청주, 광명, 용인을 거치며 아이 셋을 낳아 길렀다. 올해 초 막내아들이 결혼을 했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보금자리를 내어준 엄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내가 아는 유부녀 중 제일 점잖고 제일 귀여운 우리 엄마.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 40년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비우고 비워낸 엄마의 살림은 깨끗하고 단순했다.
낡은 흙집을 허물고 작은 이모와 함께 지낼 이층집을 지으셨다. 항상 가까이 있던 엄마가 지리산 자락으로 멀어지니 섭섭하다. 백두대간국립수목원 연간 회원이 된 엄마는 매일 산책을 나가신다. 엄마, 은퇴를 축하해요. 자주 놀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