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리스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그리스'하면 파란 지붕과 하얀 건물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그리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오래된 것과 고대문명에 환장하는 나에게 그리스는 오래될 만큼 오래된 문명의 도시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희곡 <고곤의 선물>의 주인공 에드워드가 사랑했던 나라라는 것이다.
두 가지 중 더 강력히 작동했던 의미는 후자였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그리스에 가야 한다는 에드워드의 말이 몇 년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극 중 에드워드는 죽기 전 산토리니에 살았고, 그곳에서 떨어져 죽었다. 내 브런치 필명인 HelenEd도 <고곤의 선물>의 두 주인공 헬렌과 에드워드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유럽에 내 첫 발자국을 찍은 곳이 그리스였고,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지금도 아직까지 가장 행복했던 여행지는 그리스다. 그럼에도 그리스를 여행지로 강력추천하기엔 많이 꺼려진다. 그리스는 취향만 맞으면 이보다 더 완벽한 여행지는 없지만 그리스문명에 관심이 없다면 오로지 돌덩이뿐이다. 실제로 주변에 가보고 돌밖에 없다며 실망한 사람도 있다. 웬만한 곳은 다 공사 중이라 사진이 엄청 이쁘지도 않다. 나처럼 "어머! 이 돌덩이가 오천년 전 돌덩이야!"라며 흥분할 사람에게 적합하다.
그리스에선 어느 도시를 가나 2시간 이상 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에도 연신 돌, 돌, 돌, 깨진 돌뿐이다. 그러나 그 아래 적힌 3천년 전을 가리키는 숫자들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여행에서 꼭 고집했던 도시가 '크레타'와 '델피'였는데, '크레타'는 우리가 잘 아는 미노스의 미궁이 있는 곳이고, '델피'는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델포이 신탁'의 배경이다. 크레타와 델피 유적도 정말 돌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작은 돌멩이에 말도 안 되는 의미를 붙여 가며 팔짝팔짝 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야기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 돌무더기 사이에서 신과 인간을 상상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휴양지로써가 아니라 <고곤의 선물>의 배경으로써 방문한 산토리니는 무척 아름다웠다. 극 중 작가였던 에드워드가 왜 이곳을 고집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테네, 델피, 크레타의 돌무더기와 무슨 글이든 절로 써질 것 같은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면 나도 왠지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글에 썩 재능이 많지 않은 나에게도 '영감'이 샘솟을 것만 같은 곳이다. 에드워드는 이 풍경을 보며 글을 쓰고 이 아름다운 곳에서 절망하고 결국 이곳에서 죽었구나.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다시 그리스에 가고 싶다. 고대 문명과 좋아하는 희곡의 배경이란 이유로 기대와 환상을 가득 안고 출발한 여행이었음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크레타로 향하는 야간 페리에서 본 노을과 수많은 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벌써 이 여행은 4년 전이고, 나에게 남은 것은 옅은 인상뿐인데다 글솜씨도 없어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이 아쉽다. 다음엔 스파르타의 유적을 가봐야겠다. 그 때가 온다면 나와 함께 고대 문명과 좋은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여행 동지가 함께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은 그리스의 대표 관광지 파르테논 신전으로 마무리한다. 그리스 여행 중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