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e Park Jan 10. 2018

한국과 베트남, 기러기 부부

사주에 그렇게 비행기를 많이 탄다더니.


2016년 10월 9일. 한글날에 나는 결혼을 했다. 




전무까지 승승장구하신 아버지가 보여준 결혼생활은 그다지 나에게 큰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던 전문직 어머니는 나에게 '넌 결혼 하지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결혼이 행복이 아니구나. 그럼 나는 연애만 해야지. 멋있게 내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연애를 하는거야.]



그런 내가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 동창생과 말이다. 


나와 신랑은 초등학교 학예회 리듬체조 짝꿍이었다. 초등학교 때 내리 반장과 전교회장을 맡던 나에게 주끈깨 투성이 키 큰 소년은 '문제아'라는 인식이 강했다. 체조의 합을 맞추는 순간마다 현웅이는 까불까불 나를 힘들게 했다. (나중에 신랑이 말해줬지만, 내가 정말 그를 경멸하듯 쳐다봤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 처음 만난 날. 첫눈에 반해버렸다. 조금 과장을 섞어 얘기해 보면 눈이 마주친 순간 귓속에서 '삐이-' 소리가 나며 주변이 느리게 흘러갔다. 오로지 둘 밖에 보이지 않던, 아주 절절했던 첫 재회였다. 


나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던 현웅이는 3번째 만남에서 곧바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결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외치고 다녔던 망언을 깔끔히 무시해 버리고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물론 결혼 준비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그것도 '비혼'을 선포한 딸의 결정에 어느 부모님이 단번에 오케이를 해줄까. 


엄마는 내가 결혼하겠다고 공표하자마자 연락두절이 됐다. '나쁜년, 결혼 안한다고 떵떵거리더니'라는 말과 함께.


그렇지만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지않는가. 


학예회 때 리듬체조부는 쫄쫄이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칠해야했다. 일을 하셨던 시어머니는 발표회 때 오지 못하셨고, 나는 맨 얼굴인 신랑이 짜증이 나 엄마 앞으로 데려갔다. 


학예회 이후 엄마는 가끔식 물었다. '으뜸아, 내가 학예회 때 벌겋게 입술을 칠해준 그 아이는 잘 있니?'라고. 


현웅이와 엄마가 처음 대면한 날, '그 아이가 나다!'라고 신랑이 얘기하니 둘은 절친이 됐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결혼식 청첩장 글귀 첫문장은 '인연으로 시작된 운명'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여러분이라면 한달 반에서 두달에 한번 만나는 '기러기 부부 생활'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의 답은 'YES'였다. 



현웅이는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어 베트남 호치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생활을 위해 둘 중 하나가 포기하는 것이 이상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과감히 '기러기 부부'를 선택했다. 


사주나 운세, 이런 걸 깊게 믿는 성격은 아닌데
딱 2번 본 사주에서 '해외로 많이 나가게 된다. 비행기를 많이 탄다'라는 말은 공통적이었다. 

그 말이 일종의 '성공'의 대가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기러기 부부의 암시였단말인가.


그렇게 우리 부부는 한국와 베트남을 오가며 애틋한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